Korean Med Educ Rev > Volume 22(3); 2020 > Article
죽음과 애도에 대한 고찰과 교육 가능성 탐색: 죽음 교육에 앞서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애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Abstract

Medical treatments as universal care have been turning into delivering medical technology. Coping with death, which is prevalent in all medical circumstances, without comprehensive understanding results in missing out on significant aspects between life and death. This makes doctors surrender easily to a conventional and binary division of life and death and reduces the chance of including death as a part of the medical realm. Furthermore, in terms of medical education, we need to have the opportunity to consider such subjects that can benefit from special planning and consideration. Through reviewing articles in a variety of disciplines such as medicine, philosophy, psychology, literature, and anthropology, we can better understand death, condolences, and the relevance between them in a contextual way. In order to seek a better approach, this study also aims to survey and review the recent state of death education in diverse fields of medicine in Korea. In conclusion, if it is complicated for us to explain or understand death in general, focusing on condolences as a human response to death could be one meaningful way that deserves contemplation. It is possible to regard condolences as a touchstone and a prerequisite in death education itself.

서 론

21세기의 우리는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더 없는 풍요를 이룩하였음에도, 정체와 기원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습격 앞에 생물학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 선별진료소와 병원 등으로 표상되는 의료계에서도 위기는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격리실에서, 진료실에서, 병실 및 중환자실에서 각자가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잠재적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집단 감염을 막아내기 위해 방역 당국이 대처하고자 하는 사회적, 생활 속 거리 두기란 잠재적 죽음의 자원(source)인 감염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 도 사회 안에서 생활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이자 합리적 경계일 텐데 의료현장에서는 이 거리와 경계마저도 level D 방호복 안팎으로 상쇄된다. 환자, 즉 아픈 사람을 돌보는 업으로서의 의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일시적일지는 모르겠으나―폭탄을 해체하는 폭발물 전문가처럼 잠재적 감염원을 대하는 의료기술자로 환원될 가능성이 생겼다.
한편, 현대의 생의학(biomedicine)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죽음’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거나 그것의 극복을 동력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본문에서 필자는 생의학과 현대 의학이라는 표현을 교차 사용할 계획이다. 부연컨대 생의학이라는 표현은 의학의 원리와 체계를 강조할 때, 현대 의학이라는 표현은 현재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문맥에서 사용할 것이다) 난치의 병으로 알려진 질환들에 대한 치료방식의 성적을 매길 때 5년 생존율을 golden standard로 삼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런 예에서는 힘겹게 살아남아 있는 방식과 기간은 평가되지만 덜 힘겹게 죽는 방식과 기간은 평가되지 않는다. 죽음이 도처에 가까이 있는 것을 상상할 때 이러한 전투적 세계관은 의학에 전방위적인 호전성을 부여하지만 이러한 결기 뒤에, 의학을 통해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을, 다시 말해 죽음 그 자체를 더 이해하게 될 가능성은 축소된다. 반면, 이 끝없는 전투에 소모되는 의학적 피로도의 증가는 또 다른 사회적 효과로 승계된다. 예컨대 유병장수의 고령화된 사회에서 인구집단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건강보험재정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도 및 관행으로서 요양병원의 탄생이나 연명의료 금지법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대하는 의학의 입장이 정리되어 반영된 사회적 합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죽을 수밖에 없기에 적당히 인가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인간과 ‘사회를 재생산하며 더 살 가치가 있기에 의학적 노력의 투여가 정당화된’ 인간으로 환자군이 나뉘어진다는 사실은 은폐된다[1].
의학적 치료가 전인적 돌봄의 기예가 아닌 적정 의료기술의 전달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는 시대에 죽음에 대한 포괄적 이해 없이 의료환경 전체를 도처에서 포위하고 있는 죽음을 마주 대처한다는 것은 삶으로부터 죽음으로 이행하는 난맥한 지점들을 충분한 사유없이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의사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관행적인 이분법적 구획에 너무 쉽게 굴복하게 만드는 형국이 될 것이며, 결국 ‘죽음’을 다루어야 하는 의학의 일정 영역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이는 치료자인 의사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인데다 최소한 의학의 입장에서 발전적인 일이 아니며, 따라서 의학교육의 입장에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죽음에 대한 포괄적 교육’이란 이 지면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도, 분량도 아니거니와 의학에 있어서 다학제적인 대화와 집단지성의 풍부한 논의 및 반성적 사고를 요하는 일이기에 의학교육의 입장에서도 특별한 기획과 고민이 요청된다 하겠다.
본고에서는 죽음 전반에 대한 논의를 다루지만 죽음 그 자체에 대한 탐사를 시도한다기보다 죽음에 당면한 인간의 반응(response)으로서 ‘애도(condolences)’에 대한 이해에 먼저 천착하고자 한다. 의학의 오래된 치료방식 중 한 가지로서 경험적 치료(empirical treatment)라는 방법론은 병의 원인이나 병태생리를 정확히 모르더라도 치료제를 경험적으로 투여하고 그 반응을 보며 치료방식을 수정하거나 유지시키는 방식이다. 같은 의미로 필자는 죽음 그 자체를 통전적으로 파악하거나 설명하기가 난맥할 때,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에 집중하는 것이 논의를 시작하는 유의미한 방식중 하나라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이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고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정신분석 용어사전에서는 보다 맥락적으로 적힌다. 이를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 애도는 주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사별)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일컫는다.”
요컨대 ‘의미 있는 대상의 죽음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 애도라고 한다면 의료현장에서는 의미가 부여된 (환자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반응의 적실성을 검토하는 것이 애도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애도가 대상의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사안이라고 이해될 소지가 있음에 대해, 본고에서는 예상되거나 예고된 죽음이 이르기 전, 죽어감의 과정부터 발생 가능한 반응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죽음을 직면할 때, 가장 강렬한 슬픔과 안타까움은 죽음 선고 이후보다는 이전에 경험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며, 죽음 이전부터 이후로 연결되는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반응의 맥락을 굳이 분절시켜 호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애도의 발생 및 시기적인 문맥에 대해 이론적인 보완은 애도의 윤리와 관련하여 본론에서 추가적으로 다룰 것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한국적 의료상황의 맥락을 전제로 하고, 먼저는 의료진의 입장에서, 또한 죽어가는 환자가 환기하는 의미이자 마침내 당도할 죽음에 대한 반응의 측면에서, 애도의 결락이 가져오는 문제들을 가상의 사례를 중심으로 고찰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한 다음, 죽음과 애도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의료진의 입장만이 아닌 말기 환자 및 보호자 혹은 유가족, 그리고 그들을 아우르는 전반의 사회・문화적 전망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를 시도하고자 기획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죽음과 애도의 문제를 다룬 문학과 철학, 심리학 및 인류학의 문헌들을 함께 검토함으로써 관련된 논의의 지형이 풍부해질 가능성을 살피고자 한다. 한편,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국내에서 의료 직능별로 죽음과 애도의 문제 전반에 대해 ‘죽음에 대한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다룬 논문들을 살펴봄으로써 국내 죽음 교육의 동향과 그 실제적 효과를 개관해 보고자 하였다. 결론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죽음과 애도의 문제가 지닌 함의를 재고하여―처음 제안된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하는바―죽음에 대한 이해와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의 측면에서 의학교육에 있어 추가적 성찰이 필요한 전망과 과제를 정리하며 졸고를 마칠 계획이다. 명시적으로, 각 의료환경에서 난립하는 죽음을 구성원 각자가 이해하고자 할 때뿐 아니라, 의료인/비의료인 구획을 초극하며 서로 공명할 수 있는 죽음 이해의 공동기반을 확장하고자 보편적인 죽음교육의 측면을 탐사할 때도 죽음에 당면한 반응으로서 ‘애도’가 중요함을 제안하는 것이 본고의 주요한 목표이다.

의료현장에서 나타나는 죽음과 애도의 문제: 가상의 사례를 중심으로

Case 1: A병원 응급실에 방문한 B는 담관암 말기이다. 그녀는 1년 전 암 진단 시 수술적 치료를 받고 완치의 희망을 품은지 6개월 만에 암이 재발했고, 이어지는 항암 화학치료 및 스텐트 시술 등을 견디며 투병했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 화학요법을 포기하고 지난주 입원 후 수일 만에 자의 퇴원했다. 자의 퇴원 후 집에서 민간요법을 검토하며 견딘지 십수 일 만에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황달이 심해지는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주치의 C는 추가적 시술 및 치료 재개, 투석 고려 등을 권고하였으나 B는 더 이상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아 그런 치료들을 거절했다. 그러자 설득을 멈춘 주치의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그렇다면 자신이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호스피스를 담당하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하고 전공의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자리를 떠났다. B씨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지시를 받은 전공의는 이미 분주하게 전원 조치를 진행하고 있었다.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B는 자신의 환자 신분과 그에 대한 의료 체계의 대응이 무언가 이전과 다르게 분류 및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최종 국면에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모종의 방식을 기대하며 그동안 치료받았던 병원을 찾았으나, 오히려 깊은 좌절과 실망, 그리고 거절감을 느껴야 했다.
Case 2: D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E는 의식이 돌아오고 있지 않다. E는 뇌출혈로 입원하여 병실 치료받는 중 병발한 폐렴에 심각한 호흡부전증후군으로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전실되었고 기관 삽관 및 기계호흡을 적용받는 중이나 상태가 계속 악화 중이다. E의 아들 보호자 F는 기다리던 중환자실 회진시간에 주치의로부터 유감스러운 말씀이지만 현재 치료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더 이상 해줄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F는 아버지 E와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의료진에게 의식을 깨워줄 수 있냐고 문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주치의가 다음 회진을 위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뒷모습을 보며 F는 그럼 이제 정말 아무것도 못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외치고 싶은 울분을 가까스로 삼켰다. 주치의의 뒤를 따르고 있는 전공의 G는 F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고 평소 돌보던 환자 E의 보호자라 안면이 있는 사이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G는 다음 회진을 향해 주치의를 앞서가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위에 등장하는 가상의 사례 case 1과 case 2는 다소 비극적 서사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예시이기도 하다. 아울러 보기에 따라서는 의학적 치료계획이나 국내 의료전달체계의 역량 분배적 관점으로 볼 때 합리적인 관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죽음과 애도’의 시각으로 사안을 다시 확인하면 논의의 지형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의미 있는 대상의 죽음과 그 상실에 따른 적실한 반응이 애도라고 한다면 위의 사례에서는 죽음의 의미 및 그 반응으로서의 애도가 모두 진공상태인 것만 같다. 죽음이라는 단절과 상실을 마주 대하며 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주치의에게도,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전공의에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주치의 C는 치료계획이 중단되어 석연치 않았고, 환자 B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거절감을 경험했으며, 보호자 F는 무기력감에 이어 울분에 차 있었고, 전공의 G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된 것 같은 이런 상황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의학적 사유가, 생존에 대한 논의에 비해 생의학과 의료사회에 빈곤한 것은 차치하고, 의미 있는 대상의 죽음과 상실이 모종의 반응으로 실체화하여 나타나기까지 일체의 과정이 누락되었다. 주치의도, 환자도, 보호자도, 전공의도 각자가 생각하는 죽음, 그 상실에 대한 관점을 일련의 공통된 의미 기반에서 공명시키지 못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가장 근원적인 요소는 죽음과 상실에 대해 관계된 각자가 서로 공명하고 소통할 정도로 충분한―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의 표현을 빌자면―common trading zone, 즉 공동의 지평으로서 ‘반응’ 구간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2]. 이는 다시 말해 지금까지 말해온 주제, 즉 ‘의미 있는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의 결락이다.
상기의 문제의식을 따라 본고에서는 죽음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서 애도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면적인 고찰을 시도하고자 기획하였으며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교육의 가능성을 탐사하고자 하였다. 고찰의 범위를 넓히고자 의학 이외에도 문학, 철학, 심리학 및 인류학의 저술들을 검토하였으며, 특히 죽음 교육과 관련된 저작들을 개관할 때에는 의료인의 범주로 제한하지 않고 의과대학생부터 요양보호사에 이르기까지 직능별 교육현황을 보여주는 논문들을 정리 및 소개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본고에서 다루는 저작들을 검색하기 위해 국내 학술지 검색 시에는 ‘죽음,’ ‘애도,’ ‘죽음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했으며, 국외 학술지에서는 ‘death,’ ‘condolence,’ ‘life and death’ 등의 키워드를 사용하였다. 2000년 이전의 저작들은 고전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배제하였고 가능한 범주에서 다양한 출처의 학술지를 원용하고자 노력하였다. 다만 주지하다시피 죽음과 애도의 내용과 방식은 문화와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본고는 주로 한국적 상황을 다루고자 기획하였으므로 본고에서 주로 검토하게 되는 저작들은 국내의 상황을 반영하는 비교적 최근의 국내 학술지나 단행본 위주가 됨을 밝혀 둔다. 다만 일부 최신 문헌의 경우에는 국내의 저작보다 해당 주제에 대해 비교적 논의가 활발한 국외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죽음과 애도’에 대한 다학제적 고찰: 죽음 이해와 애도의 윤리

본 장에서는 죽음 및 죽어감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에 대한 사유가 의료현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어떻게 조망되고 있는가를 다학제적인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다만 죽음에 대한 총체적인 학문적 도해를 이 지면에 망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 장에서는 주로 의료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죽음과 견주어 각 학문의 의제들이 어떤 다양한 목소리와 화두들을 갖는지에 주목해볼 것이다. 아울러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의식으로 고찰해볼 계획이다.
죽음은 좁은 의미로는 현대에 이르러 각종 병증에 의해 신체의 활동이 정지하게 될 때 병원에서 맞이하고 의사 및 의료인의 손에서 판정이 나는, 단순히 삶의 종료 지점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류에게 피해갈 수 없는 운명으로서 삶을 규정하고 위치 짓는 결정적 심급이기도 하다. 문학에서는 죽음을 삶, 사랑과 더불어 인류의 3대 난문 중 하나로 여기기도 하며, 철학에서는 니체 이후로 신의 죽음을 말하면서까지 죽음이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인간적 실존의 문제임을 환기시키기도 했다[3]. 한편,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 죽음은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단절과 연속성을 통해 공동체를 순환시키는 의례와 상징의 장으로 다루어지기도 하며, 실존주의 심리학에서는 죽음을 삶의 근원적인 동력으로, 정신의학 중 일부 분파에서는 죽음을 삶이 완성되고 수렴되는 최종 국면으로 호명하기도 한다[4,5].
1857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는 유명한 저작 “악의 꽃”을 발표하며 풍속 문란의 스캔들에 휘말렸던 바 있다. 이 스캔들은 당시 전통적 문학관에 대한 결정적인 이의 제기로서 결국 ‘현대성의 문을 열었다’고 여겨지며, 이 지점에서 소위 현대성의 핵심은 ‘일상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추출해 내는 상상력에 있다’고 평가된다[6]. ‘악의 꽃’이 형상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제는 다름 아닌 ‘죽음’인데, 금기시되는 죽음을 공포와 부정성만이 아니라 해방이자 희망으로서의 의제로 설정하여 ‘악’에서 ‘미’를 추출한 것이다. 다만 Yu [6]가 “죽음을 바라보기를 오랫동안 단념했던 까닭에 오늘날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라고 말한 것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환기하는 이중성이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는 점에서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이면에 대한 탐사와 시도는 실상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학문적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철학자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는 그의 저작 “에로티시즘”에서 죽음이 인간의 영속성에 대한 열망을 분쇄하기 때문에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언명했으나 죽음이 갖는 관능적 속성에 대한 탐미적 추구를 멈추지 않았고[7],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유기체의 죽음 본능을 말하면서 죽음이 긴장의 최고 감소상태인 ‘쾌’의 절정이라고 묘사함으로써 죽음과 쾌락의 관계를 설명해낸 바 있다[8]. 요컨대 죽음에는 우리가 비극적인 종말이라고 묘사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속성이 있음을 지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죽음의 이면성 탐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의 의미를 삶의 영역 안에 위치 짓고 적극적으로 탐구한 견해도 있다.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실존 심리학의 관점으로 발전시킨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의 연구 및 저작이 그것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 인간들이 보이는 보편적인 태도에 주목하였고 인간이 죽음에 어떻게 저항하고 대응하는지 깊이 연구하였다. 베커는 그의 걸출한 저작 “죽음의 부정”에서 인간은 무의식 안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계속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억누르거나 무시하기 위해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한다고 지적한다[9]. 다시 말해 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곧 삶의 동력이 되는 셈이며, 이러한 영웅주의적 행동양식으로 점철된 삶은 죽음의 공포를 망각하기 위한 절차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발동되는 심리 기제가 ‘나르시즘’과 ‘전이’이다.
(...) 신이 자기편이라는 확신은 가젤보다 사자가 더 크게 느낄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 유기체는 삶의 경험에서 자신을 확장하고 영속화하려 함으로써 스스로의 나약함에 적극적으로 맞선다. 움츠러들기보다는 더 많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가지씩 수행한다. 이렇게 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신중하게 무시하거나 생명 확장과정에 실제로 흡수할 수 있다[10].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베커에 따르면 나르시즘은 자신의 유약함에 대응하며 삶의 저변을 확장시켜 나가는 동시에 죽음의 부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기제가 된다. 한편, ‘전이’란 나르시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시전된다. 이에 대해서는 베커를 원용하여, 죽음을 대하는 현대 의학의 문제에 적용시킨 Park [11]의 견해가 적확하리라 생각하여 옮긴다.
자신의 유한한 피조물성을 체현한 인간은 이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이’라는 방어기제로 자신보다 우월한 권력이나 절대성에 스스로를 동일시하거나 예속시켜 다시 나르시즘적 안정감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전이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착각을 유발하며 (...) 맹목적인 전이에는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의 원천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자 하는 욕망이 깔려 있고 이것들은 국가, 혈통, 조국, 민족과 같은 신비와 집단주의를 조장하기도 한다[11].
Park [11]은 나르시즘과 전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방식을 죽음을 대하는 현대 의학의 태도에 적용시켜 비판을 시도한다. 나르시즘은 자신의 능력을 자존감의 근거로 삼는 것이고, 전이는 집단이나 문화에 자신을 예속시켜 동일시하는 것인데, 이러한 일이 죽음 앞에 선 현대 생의학의 입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현대 의학은 첨단과학이라는 기술적 ‘나르시즘’에 의존해 왔으며, 결국 극복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설 때는 법률, 원칙주의, 치료지침이라는 도그마적 권위안으로 자신을 ‘전이’시켜 자존감을 지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명의료 포기법 안에 자의로 서명하여 현대 의학적 치료의 지침을 벗어난 환자들은 더 이상 의학의 고려대상이 아니며, 그것은 의학의 무기력함이 아니라 환자 자신의 법률적 결정이기에 의학적 권위와 자존감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는 식이다. 의사들이 현대 의학적 전이에 빙의하여 치료지침에 따라 무리한 연명의료를 강행하거나 혹은 치료 포기 후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을 상실감 없이 마주 대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이유가 이러한 논점에서 설명 가능해진다.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대하는 반응으로서 애도의 부재 또한 설명될 가능성이 열린다. 즉 전이라는 착각 속에서 도그마적 권위에 예속된 의학과 의료진의 입장은 죽음을 슬퍼하거나 제대로 반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슬퍼하거나 반응하는 순간 죽음 앞에 무기력한 자신을 바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 의학의 맥락에서 의료진의 입장이 아니라 환자 및 보호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이는 죽음의 문제는 어떠할까. “죽음의 부정”의 서문을 썼던 샘 킨(Sam Kean)은 어니스트 베커와 동시대를 살았던 죽음의 전문가이자 ‘기묘한 동맹’으로 Elizabeth Kübler-Ross를 지명한다. 그녀는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의사로 이름이 높았지만, 죽음을 몸소 체현하는 과정을 저술한 환자로서도 이름이 알려진 바 있다. 의과대학에서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도식처럼 배우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가 그녀 연구의 산물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 도식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강조한 바 있다. 그녀는 상실을 ‘수업’이라고 부르며 죽음을 ‘완성’이라고 부른다[12].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고 죽어가는 이를 돌보는 일에 있어서 큰 반향을 만들어냈고, 죽음을 비롯해 수많은 상실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 시대에 시작되었던 호스피스 운동이 의료사회 및 의학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류의 문화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동시대에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첨단 의학기술과 죽음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공포가 경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의 반영일 것이다. 요컨대 죽음의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또한 퀴블러-로스의 저작은 그녀 자신이 말년에 죽어가는 환자로서 수기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문가로서의 조언 같은 성격이 강하다. 예컨대 “인생 수업”이라는 그녀의 저작에서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라고 쓰거나 ‘죽음이 궁극적인 상실은 아니다’라는 언명을 통해 죽음이라는 상실로부터 회복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의료현장에서 죽어가는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사안이 어느 정도 지난 다음에나 귀담아들을 만한 제언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의료현장의 생의학적 시간은 그 바깥의 일상적 시간과 사뭇 다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이자 예술가인 아부 파먼(Abou Farman)은 그의 아내가 유방암 판정 및 치료를 받다가 재발한 후 마침내 생의학적 가망이 없는 시기인 ‘terminality’로 분류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아성찰적인 민족지를 기술한다[13]. 무엇보다 파먼의 문제의식은 인간이라는 입체적 존재가 죽음을 앞두고 생의학적 체계 안에서 임시적인 시간 단위인 ‘terminal’로 축소되는 것에 향해 있다. 인간의 죽음은 본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비해 생의학적 카테고리로서 임종기 환자라는 분류는 단지 일시적인 시간성에 불과하기에 환자의 인간 존재는 압축 당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학자이나 엄마이자 작가가 아니라, 단지 삶이 3개월 남은 사람이 되는 식이다. 파먼은 terminality라는 생의학적 기획이 ‘모든 것을 계수, 계량화하여 평가하는 수량적 사회에서 죽어가는 과정을 사회화하기 위한 수량적 방식’이라고 비평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ars moriendi)’ 라는 중세 기독교식 질문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자조한다[13]. 이렇게 보면 퀴블러-로스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낙관했던 ‘시간’ 중 필연적이고 아마도 가장 고통스러운 일부는 생의학적 재단에 의해 폭력적인 존재 압축의 방편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렇게 축소된 존재를 향해 전인격적인 반응인 ‘애도’가 적실하게 발생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생의학적 시스템 내에서 애도의 결락은 행위자인 의사나 환자의 문제라기보다 다분히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
한편, 퀴블러-로스는 그녀의 다른 책 “상실 수업”에서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슬픔’을 내적인 영역이자 감정으로, ‘애도’를 외적인 영역이자 관습으로 구획하는데, 실상 이러한 구획은 감정과 의례를 구태의연하게 분리하는 일이 될 수 있다[14]. 물론 의례로서의 애도는 나름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기능을 가진다. Kaufman과 Morgan [15]은 “삶의 시작과 끝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죽음에 대한 그간의 인류학적 현지조사와 기획을 정리한 바 있다. 그들은 최근의 인류학적 기술(ethnography)이 산 자와 죽은 자의 핵심적 관계에 주목한다며, 죽은 자들의 배치(disposition)와 기념(memorialization)이 살아있는 자들의 사회적 정체성에 심오한 영향을 끼치기에 인류학은 연구 초기부터 죽음과 사별의식, 즉 애도를 연구해 왔다고 밝힌다. 예컨대 ‘죽음의 인류학을 재고(revisit)’하고자 기획해 온 Matthew Engelke는 그의 최근 논문에서 인류학자 David Graeber가 1995년 현지 조사한 Merina족 매장의례인 ‘Famadihanas’를 환기하는데, 이 의례에서 산 자들은 죽은 자의 시신과 애도의 춤을 추며 매장준비를 한다[16]. 죽은 자는 명예롭게 호명되고 산 자들은 축복을 구하며 춤을 추는데, 이때 춤사위는 실상 죽은 자와 산 자의 연결(connection)인 동시에, 시신을 비인격화하여 매장을 위해 싸매며 산 자로부터 단절(detachment)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는 애도의례를 통해 재구성되며, 의미 있는 존재의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무질서가 기념되고 재배치되며 다시 사회질서 안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한편,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의례의 동력과 과업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레베카 루이스 카터(Rebecca Louise Carter)는 미국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다친 아이들을 둔 흑인 어머니들이 기독교의 기치 아래에 서로를 위로하고 모임을 가지며 공동의 모성으로 연대하는 현장을 탐사한다[17]. 아직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카터는 이러한 흑인 어머니들의 움직임을 ‘애도’의 관점에서 재평가한다. 죽은 자녀의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것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작업은 죽은 자를 대신해서 산 자가 자신과 타인의 공동작업을 진행하는 애도의 행위가 되며, 이것은 죽은 자가 산 자의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방식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폭력적 관행 및 지배권력 구조에 미묘한 균열을 내는 사회적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도의 형태가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과 더불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의례로서의 애도가 여전히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힘을 가지고 있음을 고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의료현장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던져볼 만한 질문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좋은 애도란 무엇인가. 실상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조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애도의 방식과 내용은 조정할 수 있다. 우리가 죽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을 수정할 수는 있으며, 죽어가는 이를 살려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반응하는 방식은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의 의제를 ‘애도의 윤리’라고 호명하고자 한다. 의료사회내 세세한 규칙과 지침조차 일련의 의무이자 윤리로 받아들이는 의료계의 관행은 차치하더라도, 최종 심급으로서 인간의 죽음에 당면한 반응인 ‘애도’에 대해 일련의 윤리적 감각을 부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도와 멜랑콜리”라는 유명한 저작에서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애도와 비정상적인 멜랑콜리를 구분하면서 의미 대상을 상실 후 고통을 겪는 주체가 그 대상에게 투여되었던 리비도를 회수하여 자아로 되돌리는 작업이 완수될 때 정상적인 ‘애도’이며, 상실한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리비도를 철회하지 못하는 병리적 과정이 ‘멜랑콜리’라고 천명한 바 있다[18]. 이는 정상적인 애도과정인 ‘내재화’와 비정상적인 과정을 말하는 ‘합일화’를 주창한 니콜라스 아브라함(Nicolas Abraham)과 마리아 토록(Maria Török)에 의해 계승되었고 정신의학 교과서에도 소개된다.
반면,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애도의 불가능성을 말하며, 진정한 애도란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언명한다. 이는 프로이트 학파의 사람들에게는 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추상같은 이의 제기에 해당한다. 프로이트나 아브라함/토록이 말하는 정상적인 애도가 데리다에게는 의미 대상을 타자로 고립시켜 주체로부터 영원히 추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죽음이 프로이트에게는 타자를 잊는 시작인데 반해, 데리다에게는 타자를 기억하는 시작점인 탓이다[19]. 아울러 본고의 서론에서 말했던 애도의 발생 및 시작 시기와 관련해서도 데리다의 논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 다루는 의료현장의 애도가 사별 이후보다는 이전부터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데리다의 관점에서 애도는 대상의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만남은 보통 ‘예측할 수 없는 작별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기에 애도는 실상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에 함께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20]. 그의 친구였던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추모강연에서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 죽어가는 타인의 죽음은, ‘책임이 있는 나’라는 나의 정체성 자체 속에서 내게 영향을 미치며 형언할 수 없는 책임을 이룬다. 그것이 바로 그의 죽음과 맺는 나의 관계이다[21].”
물론 환자를 치료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의 관점과 철학적, 윤리적 사유를 중점으로 두었던 데리다의 입장 차이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의 형식으로 보는 편이 생산적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19]. 적용컨대, 의료현장에서 애도의 윤리를 재구성하고자 할 때에도 프로이트와 데리다 진영의 양측에서 길어 올린 진중하고 생산적인 사유들과 그 건강한 긴장이 논의의 근간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의료현장에서 행해지는 죽음 교육의 현황과 실재

전 장에서, 의료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죽음과 그 반응으로서의 애도에 대해 다학제적 의제들을 검토하며 각각의 사유가 현대 의학이라는 토양에 어떠한 새로운 시각들을 제공하고 논의의 저변들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서로 공명하게 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 그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토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특히 직접적인 직능에 해당하는 의료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이 질문은 일차적으로 교육이나 훈련에 대한 질의가 될 것이다. 본 장에서는 의료현장을 구성하는 각 구성원별로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고 그 효과를 분석하거나 죽음 교육 현황의 내용과 실재를 탐사한 국내 논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Cho와 Kim [22]이 간호대학 학생 일부에게 죽음 교육을 시행하고, 교육받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할 때 교육의 영향을 분석한 논문에서 죽음 교육이 간호대학 학생의 죽음불안을 낮추고 임종간호 태도가 긍정적으로 호전된 것을 보여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죽음 교육은 저자들이 문헌을 선정하여 진행하였고 실험설계에서 죽음불안 척도 및 임종간호태도를 일련의 scale을 사용, 수치화하여 비교하였다[22]. 이는 죽음 교육을 독립변수로 설정하여 그 효과를 평가하는 시도로서의 의미 외에도 죽음 교육을 어떻게 체계화할 것인가하는 과제에 대해 추가적 논의의 필요성을 환기한다.
An과 Lee [23]는 노인 요양병원 간호사 250명을 대상으로 죽음 교육이 임종간호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였다. 죽음 교육은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여기서 좋은 죽음이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죽는 것’으로 정의하였다[24]. 즉 인간이 원하는 삶을 살다 스스로가 준비했던 죽음을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현대 의료로 인해 인간존중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신체적으로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을 말한다. 이 연구에서는 좋은 죽음 인식과 임종간호태도를 조사하기 위한 설문도구를 각각 사용하였고, 각 설문도구는 하위항목별로 점수화되어 합산되는 형식으로 정리되었다. 좋은 죽음 인식의 주요 하위요인은 친밀감, 임상증상, 통제감이며 임종간호태도의 주요 하위요인은 임종 인식, 임종 정서, 임종간호 수행인데, 조사결과 임종간호태도와 좋은 죽음 인식 간의 상관관계는 유의미하지 않았으나 좋은 죽음 인식의 하위요인인 친밀감과 유의미한 정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또한 임종간호태도의 하위요인인 임종간호 수행은 좋은 죽음 인식과 유의미한 정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3]. 요컨대 죽음 교육과 임종간호 수행의 상관관계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복잡한 하위 역학이 있음을 예상할 수 있으며, 간호 수행의 질을 다각도로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죽음 교육의 질을 입체적으로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고찰도 가능하다고 하겠다.
한편, Yi와 Lee [25]는 간호사의 환자 죽음 수용에 대한 개념분석을 시도했는데, 간호사의 환자 죽음 개념속성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내리기 위해 1999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간호사의 환자 죽음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16편을 분석하였다. 조사결과 간호사의 죽음 수용 개념은 ‘환자 죽음을 경험한 간호사가 애도를 통해 도달하는 단계로 자신의 삶을 반추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고 환자 죽음을 의연하게 바라보며 인간존엄을 간호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25]. 이러한 조작적 정의는 재현(representation) 및 재구성된 것으로서의 한계가 있으나,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애도’가 간호사로서의 직업윤리 및 성장에 어떤 동력과 의미를 제공하는가 하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의과대학생들을 위한 최근의 죽음 교육 관련 연구로는 Kim과 Park [26]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 연구는 의과대학생들에게 영화감상, 토론수업 등의 죽음 교육을 통해 아직 임상을 경험하지 않은 저학년 시기부터 다양한 죽음의 서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에 대해 개인적, 집단적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말기 환자 돌봄 태도 및 자아, 삶,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을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다. 연구결과 죽음 교육 이후 말기 환자 돌봄태도는 긍정적으로 변화하였으나, 임상경험이 있는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타 대학의 선행연구와는 다르게 죽음 불안이나 자아존중감 등은 큰 변화가 없었는데,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의과대학생의 죽음 이해 수준별로 맞춤형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는 고찰을 도출한다.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겪는 죽음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애도작업의 어려움을 의학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조명해볼 때, 의과대학 저학년부터 임상실습을 나오는 고학년, 수련을 받는 의사인 전공의 시절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이고 개별적인 죽음 교육 혹은 그에 준하는 논의의 장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Yoo 등[27]의 시도가 갖는 의의가 있다. 저자들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의과대학생들의 가치관을 탐사하기 위한 시도로 은유분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데, 국내의 한 의과대학 재학생 435명에게 생명과 죽음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묘사하는 개방형 설문을 적용하여 은유화 된 이미지를 수거한 뒤 반복적 비교분석을 적용한 것이 그것이다. 그 결과 ‘생물학, 의학 관련,’ ‘감정 관련,’ ‘사회-문화 관련,’ ‘추상적 상징 관련’ 은유의 4가지 유형으로 범주화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의학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생사관의 원형(archetype)을 반영하는 기초자료라는 점에서 함의가 있다. 물론 ‘은유’라는 방식이 명시적이지 않아 모호하다는 한계가 있고, 이를 기초자료로 활용하더라도 향후 균형 잡힌 죽음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죽음 교육을 의과대학 학생 시기부터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향후 후속연구를 통해 교육의 효과를 가시화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추이가 주목된다.
한편, Kim 등[28]은 수련받는 의사인 인턴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임종돌봄에 대한 교육 필요성을 도출하였는데, 이는 2개 병원 인턴 65명이 제출한 설문조사에서 의과대학의 임상실습시기 동안 임종돌봄에 대한 경험이 미진한 채로 인턴 직무에 투입되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임종돌봄의 경험이 없이 마주 대하는 죽음 앞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수련의들에게 적실한 애도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이는 본고에서 제시하는 ‘애도의 결락’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임상실습을 위시한 의과대학의 죽음 교육에도 해법의 지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물론 이러한 죽음 교육은 의료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의료현장에서 죽음을 맞닥뜨리는 사람들은 의료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의 사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환자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죽음을 당면한 반응으로서의 애도작업이 죽음을 둘러싸고 일어날 때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죽음 이해와 애도작업이 탁월한가 하는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의료진과 보호자, 그리고 환자까지 서로 공명하고 소통할 수 있는 죽음 이해와 애도의 저변, 그 공통의 기반이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죽음 교육 관련 연구가 가지는 함의가 있다.
예컨대, Jung과 Byun [29]은 좋은 죽음에 대한 교육이 요양보호사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으며, 죽음 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죽음 불안이 감소하고 죽음 수용에 대한 이해가 증가함을 확인하였다. 물론 적은 표본 수 및 단면적 설문조사에 의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1차적인 돌봄을 실천하며 밀착되어 있는 비의료인 직군들에 대한 죽음 관련 연구가 부족한 만큼 이러한 연구들에 주목하고 향후 추가적인 연구설계에 있어 자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Kwen 등[30]은 암으로 진단받고 4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183명을 대상으로 입원 암 환자의 죽음 준비와 죽음 불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특히 죽음 불안에 대해서는 설문도구를 사용하였는데, 설문에는 존재 상실, 죽음과정, 사후 결과의 3가지 항목으로 문항을 구획하였고, 조사결과는 사후 결과나 존재 상실에 대한 불안보다 죽음과정에 대한 불안이 가장 높게 나타났음을 보여준다[30-32]. 즉 병원 내 임종과정이 주는 불안이 죽음 불안 중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다는 뜻으로 이는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의사소통 및 공통된 죽음에 대한 이해의 저변 확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당위적 근거가 될 것이다.
그 밖에, 장애우 가족 16명을 대상으로 죽음 교육의 효과를 고찰한 Kim 등[33]의 연구는 죽음 교육 전후로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삶의 의미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함을 보여준다. 질적, 양적인 연구과정의 평가와 추가적인 보편화 작업이 필요해 보이지만, 이 연구는 죽음과 삶의 두려움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죽음에 대한 이해가 삶의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긍정하는 동시에 상해 및 질병이나 죽음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더 불안해 하는 대상자들을 향한 죽음 교육이 갖는 사회적 의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죽음 교육프로그램에 1년간 참여한 지원자 205명을 대상으로 죽음 인식과 죽음에 대한 태도들을 분석한 Kang 등[34]의 연구가 갖는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겠다. 연구대상자들은 절반 이상이 질병과 자원봉사 경험을 통해 죽음 수용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하며, 죽음 교육과 함께 진행한 연구결과는 대상자들의 생의 의미 추구와 죽음에 대한 긍정적 태도 사이에 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 연구는 질병과 자원봉사라고 하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한 일종의 애도작업을 거치며 죽음에 대한 이해의 저변이 확장되기 시작한 사람들의 증례로서 의미가 있는 동시에, 죽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 같은 과정일 수 있음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준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죽음 교육이 의료인이나 비의료인을 막론하고 삶의 지향이나 죽음에 대한 태도에 일정 이상의 고무적 변화와 긍정적 반향을 만들어내는 결론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세세한 검증이나 전향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임은 아쉽고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나, 이상의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죽음 교육의 함의는 향후의 연구들을 설계하거나 교육적 의제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거점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과 제언: 죽음 교육에 있어 애도의 중요성

지금까지 ‘죽음 이해’와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가 의료현장 안팎에서 어떤 경로로 문제시되는지와 ‘죽음과 애도’라는 주제를 다양한 학제에서 어떻게 논의 중이며 그 논의의 지형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았고 아울러 그러한 사유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일에 있어 교육이 갖는 함의를 재고하고자 죽음 교육의 측면에서 국내 어떤 실천과 연구가 진행되었는가를 개관하였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바탕으로 이제 결론에서는 당면과제이자 문제해결방식으로서 심층적인 죽음 교육의 가능성을 탐색할 때 ‘애도’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주로 착목하여 글을 맺고자 한다.
Arata [3]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에서 주인공 시즈토는 전국을 유랑하면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애도하며 다니는 별난 인물이다. 그는 다른 조건은 상관없이 망자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받았으며 누가 그에게 감사했는가만을 조사하여 그 내용으로 애도를 행한다[3]. 그런데 이 소설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단지 그의 별난 행위가 주는 여운만이 아니다. “애도 예찬”의 작가 왕은철에 의하면 시즈토의 애도는 그의 주변 인물에 대해 ‘감염성과 중독성’이 있다. 그의 평가를 잠시 옮겨 보면 이렇다
“놀라운 것은 시즈토의 애도 병에 감염성과 중독성이 있다는데 있다. 독자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기사를 꾸며내고 사건을 조작하는 걸 서슴치 않던 저널리스트 마키노 고타로, 복잡한 과정을 통해 남편의 다소 변태적 요구에 따라 남편을 죽여준 나기 유키요, 그리고 아들이 애도를 그만 두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도 그를 멀리서 지켜봐 주는 사카스끼 준코에 이르기까지, 결국에는 모두가 시즈토처럼 타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35].”
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따뜻한 애도에 대한 상상력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류역사에는 참람하기 짝이 없는, 애도라고 차마 부를 수도 없는 애도의 형태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인류학자 낸시 쉐퍼-휴즈(Nancy Schepper-Hughes)는 영아사망률이 20%에 육박했던 브라질 북부에서 행한 그녀의 연구를 묶어 낸 “Death without weeping: the violence of everyday life in Brazil”이라는 저서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놓인 어머니들이 약하게 태어난 자신의 아이들의 죽음을 방조할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 미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36]. 이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가 죽어가는 상황에 대해 (약한 아이는) 일찍 죽는 것이 축복이라고 하기도 하며 아이에게 삶의 의지가 충분히 강하지 않은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 아이들의 장례식에는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의 애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는 이런 형태로 사회적 환경과 상황에 따라 경사(傾斜)되거나 심지어 폭력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애도에 있어서도 사회적 조건과 맥락이 중요해지며, 본론에서 전술하였던 ‘애도의 윤리’가 요청되는 것도 지극히 당위적인 사안이 된다.
어찌 보면 죽음에 대한 이해는 ‘죽어본 일이 없는’ 산 자들에게 실제적으로 난망한 작업이다. 의료인들이 생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시도하는 지적인 이해가 일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감성적이고 윤리적인 지점의 이해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요컨대 애도반응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에 대한 이해는, 전술했다시피 전(全)인격적인 작업인 까닭이다.
이에 필자는 앞서의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애도’는 죽음에 대한 이해를 진작시키는데 있어 필수적인 시금석이며, 따라서 이를 죽음 교육에 앞서 선결의제(prerequisite agenda)로 다루어야 함을 제안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애도와 같은 복잡다단한 반응은 단회적인 교육에 의해 형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반면 우리는 의료현장 안팎에서 필연적으로 죽음과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Kim [37]은 우리의 마음이 서로 공명하는 체험 속에서 우리가 어렵사리 하나의 사회를 기획하고 계약하고 꿈꾸고 체험한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우리 시대의 공동체를 향해 부재나 결손 혹은 비관과 진실하게 대면하면서 고통과 맞서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는 고뇌의 ‘공통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38]. 서론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죽음을 맞닥뜨린 의료현장에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등 각 관계자들이 슬픔이나 고통, 대안과 의견을 소통하는 데 있어 공통의 토대가 되는 이해와 정서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애도’는 모두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체현될 수 있는 것이기에, 함께 공유하는 이해 수준의 공통 기반에 근간을 형성하는 경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이 공통의 기반은 의료인이나 비의료인 할 것 없이 사회구성원들이 평소 경험해 온 애도의 질적, 양적 수준에 따라 변화하고 공명하며 소통을 거쳐 개인과 공동체에 사회적 경험으로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 교육적 차원에서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이 지점인데, 사회구성원들이 죽음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질적, 양적 패턴이 ‘애도’라고 할 때 죽음에 대한 교육이 이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주지하듯 여기서 죽음 교육이란 정답을 가르치는 식의 주입은 될 수 없다. 좋은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확한 답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애도’는 죽음에 대해 공명하는 공통의 이해 기반을 반영하고 있기에 죽음 자체보다 논의하기 수월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윤리적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죽음 교육에 따라 향후 수준을 논하는 일이 가능하다. 따라서 ‘애도’를 죽음 교육의 주요 의제로 상정한 다음, 수준별, 직능별로 좋은 죽음에 대한 논의와 연구의 장이 넓어지는 것과 동시에 죽음 교육의 기회가 사회구성원의 성장 시기 전반에 걸쳐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학생부터 노년까지 죽음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교육이 시행되며, 대학과 병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연구과 논의의 장이 활발히 열리는 일이 애도반응의 저변을 넓히고 의료환경에서 도처에 산재한 죽음에 대해서도 능동적이고 포괄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전술했던 ‘애도의 윤리’ 또한 다학제적으로 재점화될 가능성이 열린다.
아울러 현대 의학이 당면한 과제에 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Park [11]이 지적한 것처럼 생의학적인 추동력이 좋은 죽음의 추구를 도리어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면, 의학교육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의학적 죽음 교육에 있어서 생의학이 대화할 수 있는 다학제적 학문적 지평을 재고하는 일일 것이다. 예컨대 문학이나 철학, 인류학과 심리학이 말하는 좋은 죽음의 내용과 범주가 경합하면서, 의학이 다루는 좋은 죽음의 이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은 의학교육에 있어서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Ahn [39]은 “한국의 의사상: 좋은 의사양성”이라는 논문에서 한 시대의 의사상이 의과대학 교육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의 끊임없는 교감과 설득, 건설적인 대화를 통한 사회적 실천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본고에서 필자는 의학적 역량과 사회적 감수성이 갖추어져야 하는 한국의 바람직한 의사상에, 지금까지 논의한 대로 ‘죽음 이해 및 애도의 윤리’ 덕목이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신중하게 제안하는 바이다.

저자 기여 이기병: 자료수집, 원고작성, 전반적인 논문작성 활동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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