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 Educ Rev > Volume 22(3); 2020 > Article
의과대학생을 위한 죽음학 수업

Abstract

The aim of modern medicine is to prolong life by fighting death. Doctors have traditionally believed that this was an ethical good deed. The negative connotation surrounding death has led to the avoidance of terminally ill patients. But in a modern society where death is medicalized, doctors have to see dying patients every day and are in a state of guilt from implementing meaningless life-sustaining treatments. Therefore, medical schools should allow medical students to embrace a new perspective through death education. Yonsei University Medical College has implemented death education since 2017 as an optional class for first and second year medical students. Students watch videos related to death once a week for 6 weeks and submit their reflections by e-mail. The professor reads the students’ reflections and gives them weekly feedback. Through this coursework, students realize that death is not a medical event, but rather a part of life and completion. The ultimate purpose of death education is to transform blind life-absolutist identity into narrative identity.

서 론

2017년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76.2%가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1]. 이제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것은 병원의 자연스러운 역할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들은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것도, 환자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매우 서툴다. 왜냐하면 의학교육과 사회활동 전반에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고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2]. 그 결과 첨단의료를 동원하여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신념으로 삼게 되고, 막상 의료현장에서 죽음과 죽어가는 환자를 마주할 때 그들은 혼란에 빠져든다. 19년간 한국의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한 의료인은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3].
“훨씬 위중한 환자들, 더 복잡하고 첨단화된 기술, 그 가운데서 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심폐소생술을 비롯하여 우리가 하고 있는 처치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 여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도 없었다. 멈춘다는 건 곧 생명을 포기하거나 경시하는 일이 되는 것만 같았고, 그래서 깊은 회의를 느끼면서도 맹목적으로 죽음의 반대 방향으로 환자를 잡아끌고 버티는 기분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병원은 중환자실에서부터 장례식장까지 한 공간에 불러들여 삶과 죽음 사이 ‘기이하고도 편안한 동거’를 이루는데 성공하였지만[4], 그 기이한 공간 속에서 의료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 전통적으로 ‘정체성(identity)’이란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깨닫고, 이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5]. 다시 말해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가치’이며 고정되고 불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6]. 그동안 의학교육은 ‘생명지상주의’를 의학의 중심가치이자 의료인의 정체성으로 강조해왔다. 그 결과 의료인은 환자가 죽거나 말기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최선이 실패했다고 여겨 수치심과 함께 자존감의 추락을 겪게 된다[7,8]. 나아가 이런 자존감의 추락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경우 죽음에 대해 연명의료에 집착하기도 한다[2].
한국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1999년 보라매병원 판결 이후 심화되었다. 당시 ‘집으로 퇴원하여 임종함으로써 객사를 피할 수 있다’는 한국사회의 임종문화에 따라 가족들과 상의하여 의사결정을 하였던 의료적 관행에 대해 법원은 ‘작위에 의한 살인방조죄’를 선고하였다. 이는 환자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의사들의 정체성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생명지상주의 윤리가 강화되면서 맹목적인 연명의료가 증가되었다[9]. 그 결과 나날이 발전하는 문화․ 경제적 수준에 비해 한국사회의 죽음의 질은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10].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라는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판결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탄생시켰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2년이 지난 현재 표면적으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비율은 증가하였지만, 그중 3분의 2 (67.1%)가 가족들의 합의에 의한 것으로 실상 병원 내 의료인과 환자 사이 죽음에 대한 의사소통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11]. 미국 역시 말기환자들에 대한 의사들의 기피가 심각해, 1990년대 초반 의료진의 말기환자에 대한 의사소통을 개선시키기 위해 ‘SUPPORT (Study to Understand Prognoses and Preferences for Outcomes and Risks of Treatment)’라는 중재연구가 시도되었다[12]. 그러나 2년간의 매뉴얼 교육, 보조 인력지원 등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들은 말기 중증환자와 그들의 죽음에 대해 대화하기를 여전히 꺼려했다. 결론적으로 제도적 접근만으로는 병원에서 죽음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강화하였을 뿐이었다. 근본적으로 의료인들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13].
한국의 연명의료결정법과 미국의 SUPPORT 사례는 죽음문제의 실제적 개선을 위해서는 법과 임상매뉴얼과 같은 규범적 접근이 아닌 죽음과 죽어가는 환자를 마주하면서도 자존감을 보상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의학적 가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의학교육이 그동안 기술적 발전과 실증주의에 의해 간과되었던 의학의 인간적 가치와 철학적 접근방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환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의료인의 자존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 생명에 대한 절대적 최선을 강조했던 원칙주의 의료윤리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을 통합하는 서사적 생명윤리로 의료인의 정체성을 확장해나가는 작업이다.
이에 본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2017년부터 연세대학교 본과 1학년과 2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3분기에 선택식 수업으로 진행되는 ‘의대생을 위한 죽음학’ 강의경험을 소개하여, 서사적 정체성에 기반한 죽음교육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의과대학생을 위한 죽음교육의 목표와 방향

1. 죽음교육의 목표

오늘날 병원에서 일상처럼 벌어지는 의학적 죽음의 문제점과 의과대학생(의대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죽음교육의 목표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안젤로 E. 볼란데스(Angelo E. Volandes)의 글에 집약되어 있다[14].
“의사로서 나는 불필요하게 죽음의 과정을 연장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고통과 해를 끼쳤던 사실은 나의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의 유한성이나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 자신의 죽음을 직시할 때면 무척이나 나를 불안하게 한다. 초창기에는 젊은 의사로서의 나의 의학적 훈련과 경험들이 도리어 인생에 있어서 죽음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러나 점차 나는 의사로서 부인할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하게 됐다. 의사에게 환자란, 어떻게 죽으면 안 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볼란데스의 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조건적인 연명의료는 생명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며, 불필요한 고통을 환자에게 가하는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의료인에게 죄책감을 안겨준다. 둘째, 비인간적인 ‘의학적 죽음’을 대할 때마다 의료인들에게는 자기 죽음불안이 자극되어 트라우마가 쌓인다. 셋째, 의과대학에서 생명절대주의와 첨단의학의 가능성으로 무장되었던 초창기 의사시절에는 기술과 병원의 힘에 도취되어 이러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넷째, 그러나 죽음은 지침과 기술로도 피할 수 없는 실존적 문제이기에 자신을 기계화하지 않는 한 혼란은 계속된다. 다섯째, 그러므로 이제라도 의학교육과 수련과정에서 죽음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이해가 제공되어야 하며, 그것은 어떻게 죽으면 안 되는지, 다시 말해 ‘의학적 죽음’이 아닌 ‘인간적 죽음’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2. 죽음교육의 방향: 서사적 정체성과 의료인의 역할

의대생을 위한 죽음교육은 생명체로서의 인간에만 집중했던 기존 태도의 반성을 통해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수용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는 서사적 생명윤리에 기반한 의학적 정체성, 다시 말해 생명을 기계장치의 숫자로 측정되는 생물학적 징후상태(sign)가 아닌 삶의 서사가 이어져가는 맥락(context)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15]. 그러므로 의대생과 의료인을 위한 죽음교육의 방향은 그들에게 생명과 죽음을 의학적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지 않고, 삶이라는 맥락 안에 통합시켜 이해하는 서사적 정체성을 갖추도록 이끄는 것이다.
서사적 정체성은 주체의 개별적인 사건들과 경험들을 하나의 전체적인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16]. 이러한 정체성은 타인, 즉 환자는 더 이상 의학적 성취 또는 윤리적 평가를 위한 대상이 아닌 의료인의 자기성찰을 위한 거울이 된다. 다시 말해 의료인은 환자를 질병을 담은 물체가 아닌, 삶의 과정 가운데 질병을 겪고 있는 서사적 주체로 이해하는 것이며, 특히 말기환자는 내 치료서사 속 소품이 아닌 내가 환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하는 조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적인 역할의 해석과 재해석 작업을 통해서 의료인은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반복해서 겪어가며 패배감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온전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서사적 정체성에 기반한 죽음을 대하는 의료인의 역할이란 첫째, 이미 경험한 다른 환자들의 죽음을 통해 지금의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앞으로 겪게 될 상황들을 진솔하게 위로하고 안내하는 것이다. 둘째,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환자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고뇌의 과정이 신체적 고통이나 환경적인 문제로 방해받지 않도록 의학적 수단을 동원해 지켜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완수하였을 때 감히 말하건대 삶의 평화롭고 위대한 마무리를 목격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의학적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료인으로서 목격한 완성된 삶의 마무리 혹은 안타까운 마지막 순간 모두를 자기 삶에 반영하여 의료인이자 실존적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의료인의 통찰력은 절망에 빠진 환자를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그와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된다.

서사적 죽음교육 사례

1. 수업 개요

1) 수업의 진행방법

연세대학교 3분기 Doctoring and Medical Humanities (DMH) 선택식 수업은 본과 1, 2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며,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간씩 6주의 수업으로 편성된다. 교내 및 교외의 다양한 교수들이 기존의 의학교육과정에서 접할 수 없는 올바른 의사상과 의료인문학적 소양을 계발할 수 있는 과목들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본 수업은 1학점 과목으로서 최종적으로 pass 또는 non-pass 등급이 부여되었으며, pass의 기준은 출석 60%, 수업참여도 30%, 감상문 10%를 반영하여 60점 이상으로 규정하였다. 과목의 운영방식과 평가기준은 수강신청 전에 수업계획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6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죽음을 서사적으로 인식하도록 이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죽음의 속성을 잘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형식을 채택하였다. 영상물은 저작권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학교 내 공간에서 진행하며, digital video disc(DVD)를 구입하여 상영하거나 합법적으로 영상물을 제공하는 온라인 경로를 통해 유료로 상영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효율적 수업을 위해 수강인원은 15–20명으로 제한되며, 매주 수업의 시작은 제출한 소감문 중 일부를 발표하고, 그 주 주제에 대한 교수의 짧은 강의가 이어진다. 이후 2시간 정도의 영상물을 시청한 후 감상과 토론을 나누게 된다. 과제로 매주 주말까지 자유 분량의 감상문을 이메일로 제출해야 하는데, 교수는 이에 대한 피드백을 다음 수업 전까지 이메일로 회신한다. 첫 수업과 마지막 수업에는 수업 전후의 태도와 인식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동일한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하는데, 설문지는 삶의 의미 척도, 죽음불안 척도, 자존감 척도 그리고 말기환자 돌봄태도 척도로 구성된다.

2) 수업의 주제와 구성

수업은 (1) 죽음의 의미, (2) 죽음의 철학, (3) 죽음의 윤리, (4) 죽음과 자존감, (5) 죽음과 공동체, (6) 죽음의 주체성이라는 6가지 주제를 매주 한 가지씩 순서대로 다루게 된다. 주제들은 죽음 자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죽음을 직접 겪는 당사자와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가족들과 의료인 나아가 공동체의 관점까지 고민하도록 하여, 이 모두가 삶을 완성하도록 지지해주는 버팀목임을 공감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죽음이 단지 축소된 개별적 사건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죽음이 곧 내 죽음의 완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적 서사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6주간 수업의 주제와 화두 그리고 영상물 및 그 간략한 소개는 부록 1과 같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느낀 감정들을 예비의료인의 관점에서 상대화하여 감상문으로 정리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교수자는 피드백을 통해 예비의료인으로서의 고민을 격려하는 한편, 학생 자신도 언제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서사적 주체임을 잊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2. 수업에 대한 학생평가

1) 수업 전반에 대한 평가

마지막 수업 후 학생들은 수업 및 교수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수업평가에 대한 6가지 질문에 대해 5점 척도로 응답하고, 강의의 좋았던 점과 개선할 점에 대해 주관식으로 기술하도록 되어있다. 학교 교육부로부터 제공받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의 강의 평가를 보면 학생들은 수업에 대해 5점 만점 중 4점 이상으로 평가하며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응답하였다(Table 1).
Table 1.

The results of the students’ assessment of the class (5-point scale)

Question Year
2017 (n=15) 2018 (n=13) 2019 (n=17)
1. I attended this class with sincerity. 4.09±0.99 4.69±0.48 4.65±0.49
2. I did self-study faithfully after class for meaningful learning. 3.72±1.12 4.46±0.66 4.71±0.47
3. The professors aroused intellectual curiosity about this subject. 3.94±1.06 4.67±0.48 4.76±0.44
4. The professors were fully interactive with the students. 4.09±1.06 5.00±0.00 4.65±0.79
5. Experimentation and practice helped me understand the contents of the class. 3.94±1.09 4.77±0.44 4.76±0.44
6. This class was generally satisfactory. 4.09±1.02 4.46±0.52 4.76±0.44
강의에 대한 주관식 평가에서도 대체로 학생들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응답하였다. 수업 전반에 대한 2019년 강의평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의사로서의 관점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관점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무서운 주제에 대해 의학도로서 필요한 자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영상 및 강의를 통해 힘써주셨습니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많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신선하고 좋은 기회였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 외에 죽음 앞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고 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영화를 통해 익숙한 형태의 죽음에서 조금은 낯선 죽음들까지 보게 되면서 평소에 생각하던 죽음 외에도 여러 시각에서(죽는 당사자, 가족, 모르는 사람들) 또한 여러 감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정말 매 수업 그리고 감상문에 대한 교수님의 코멘트가 기다려졌습니다.”
이 외에도 영화 선정과 사전 강의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있었으며, 부정적인 평가로는 개인의 감상이 전체 학생과 공유되는 것에 대한 꺼려함, 간혹 토론이 길어져 수업 종료시간이 잘 지켜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2) 수업방식에 대한 평가

학생들은 감상문을 주고받는 대화식 피드백에 대해 교수와 충분히 상호작용을 하였다며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였다(Table 1). 이는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가 강조한 수평적 대화를 통한 교수와 학생 간의 인격적인 상호 고양을 의도한 방식이다[17]. 제한된 강의시간 동안 모든 학생과 교감할 수 없기에 대화의 공간을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서 이메일로 제출된 학생의 감상문을 읽고 교수가 그에 대한 감상과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을 학생에게 다시 제출하는 방식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죽음이라는 주제에 몰입할 수 있게 하였다. 2019년 강의평가에서 이메일을 통한 피드백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영화를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잘 준비해주시고 매주 감상문을 꼼꼼히 피드백해주셨습니다.”
“보고서에 늘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항상 감상문에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주신 것이 감사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질문도 던져주시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신 것이 좋았습니다.”
“매번 보내주시는 소감문 답장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할 수 있게 유도해주셨습니다. 감상문 피드백도 잘해주십니다.”
“학생 한명 한명을 신경 써주시며 일일히 피드백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너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되고 교수님께서 스스로 깊은 생각이 가능하도록 유도해주십니다.”

3. 수업의 성과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죽음학 수업의 성과는 3가지 측면에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는 학생들이 죽음을 생물학적 사건을 넘어 삶의 서사로 인식하는 철학적 사고의 시작이다. 둘째는 그런 철학적 사고로 죽음에 대한 부정성이 완화되어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태도가 개선되는 것이다. 셋째는 죽음을 실존적으로 성찰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인문학적 치유과정과 성장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을 의학의 패배가 아닌 삶의 과정이자 완성으로 수용하는 서사적 정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 서사적 정체성의 시작

수업은 학생들이 예비의료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언젠가 가족과 자기 자신의 죽음을 겪어야 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서사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의도에 부응하여 회차가 거듭될수록 학생들이 제출하는 감상문의 분량은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고, 처음과 달리 글에 제목을 달거나 개인적인 경험이나 상처들을 꺼내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죽음에 대한 부정성을 극복하고 서사적 정체성을 갖추는 것은 오랜 시간의 성찰과 훈련을 통해 가능한 일이지만 학생들의 감상문과 설문지를 통해 그 변화의 시작을 엿볼 수 있었다.
학생 A: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누구는 죽고 싶어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암은 왜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넣는 것일까? 생존을 위해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이해하겠지만, 손해 밖에 남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인정할 수 없다. 원래 그런 것이라기엔 세상은 참 잔인하다. 침대에 누워서 자신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꿈을 이루어나가는 시간들을 반복해서 돌려보다가 그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체력적으로 힘든 도전을 한다고 할 때 물론 말리는 것이 맞지만, 주인공이 항암치료과정에서 암세포보다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고 말했듯이, 정말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아서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환자들의 결정을 믿고 허락해주는 것 또한 의사들이 제공할 수 있는 치료의 일환일 것이다.”
학생 B: “죽음은 때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앞으로 의사로서 일하며, 혹은 사람들을 만나며 수많은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언젠가 나에게도 죽음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위로를 건넬지,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이 수업을 통해 차근차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죽음이 익숙해지는 일은 결코 없겠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점차 성숙해지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게 단순히 생이 끝나는 순간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단계로서 내가 계획하고 정리할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임상과목 공부를 떠나 조금 쉬어갈 수 있는 수업이었지만, 깨달아 가는 진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수업이었다.”
학생 C: “수업을 듣기 전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공포스럽고, 현재와의 이별이라는 의미로 다가와 만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그건 저와 제 가족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뿐만 아니라 의사가 되어 많은 환자의 죽음을 만날 때에도 아마 동일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죽음학 수업을 통해 죽음은 인생이라는 서사의 마지막 페이지라는 새로운 시각이 저에게도 생긴 것 같습니다. 모든 책에 마지막 페이지가 있듯, 사람의 인생 또한 두꺼운 책이던 얇은 책이던 마지막 페이지가 있고, 그것을 환자가 예쁘고 좋은 문장들로 쓸 수 있게 돕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병원, 의료인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잘 살고 싶다’와 함께 ‘잘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죽음에 대한 태도 변화

첫 수업과 마지막 수업에 시행하는 설문지에는 ‘말기환자 돌봄태도 척도(Frommelt Attitude Toward the Care of the Dying Scale form-B, FATCOD-B)’가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Frommelt가 개발한 자기보고식 척도로 말기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인식과 돌봄태도를 측정하는 도구이다[18]. 원척도 FATCOD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개발된 것으로 이후 다양한 배경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FATCOD-B가 개발되었다. 이 도구는 총 30문항으로 구성된 5점 척도이고, 점수범위는 30–150점이며 점수가 높을수록 말기환자 돌봄태도가 긍정적인 것을 의미한다. 예비연구 차원에서 수업 첫 해인 2017년 설문지에 대해 통계분석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과 함께 시행하였고, ‘의과대학생을 위한 죽음교육이 말기환자 돌봄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예비연구’란 제목으로 2018년 의학교육논단에 발표하였다.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교육 전 115.53점에서 교육 후 121.23점으로 유의하게 증가하였으며, Cohen’s d는 0.73으로 ‘중간–큰’ 효과크기를 나타내었다[19]. 이런 변화의 지속성 및 실제 영향력은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병원 수련의가 되었을 때 동일한 설문지를 다시 진행하여 대조군과 비교할 수 있다면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인문학적 치유 및 성장의 체험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 67명 중 26.9%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였다. 학생들은 죽음교육을 통해 과거 자신이 겪었던 상실과 마주하며 스스로의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상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킬 수 있는데, 공동체와 사회가 제공하는 적절한 죽음교육은 이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의 상실에 공감과 연민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심리치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학생들 중 수업태도나 감상문에서 심리적 돌봄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경우는 의학교육학교실에 의뢰하여 연계프로그램과 전문교수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음은 상실경험을 적은 학생들의 감상문 일부를 발췌하였다.
학생 D: “할머니가 나의 기억 속에 서사로 남아있다면 나는 왜 그것을 더 행복하고 다정하고 기쁜 서사로 남기지 못했을까. 할머니는 사랑스럽고 행복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러지 못한 사람인 것이 고칠 수 없는 맺음으로 남아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죽음이 패배의 서사로 남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남은 자들의 서사와 표현방식에 의존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객관적인 사실도 바탕이 되겠지만 남은 자들의 주관적인 기억에 더 영향을 받기에 서사를 작성하는 이들이 죽은 이들과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학생 E: “약 7년 전 저희 가족은 10년이 넘는 투병생활을 하시던 할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몇 년은 병실에서 뼈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약과 의료기기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차라리 편하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다른 가족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더군요. 하지만 죽음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결했고, 그녀를 포기한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더 좋은, 더 성숙한 죽음이 가능했을 것 같다는 미련이 남네요. 제가 어느 병원 어떤 파트를 전공할지 모르겠지만, 수업에서 배우고 느낀 바를 통해 저희 가족처럼 죽음을 대처하는 사람이 적어질 수 있도록 환자와 보호자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학생 F: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가 죽게 되면, 그와 어느 정도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아닌 경우도 많겠지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같은 반 친구가 자살을 했을 때 내가 그랬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의미를 부여하는 일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삶과 죽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그것을 수용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는 사별 후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라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낮 인형인 비앙카의 장례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애도했던 것은 살아가야 하는 자의 죄책감을 위로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 중에는 의과대학 진학 이후 반복되는 시험과 경쟁에 지쳐 오히려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죽음교육을 통해 삶에 대한 실존적 성찰을 하여 자존감을 회복하는 경우도 관찰할 수 있었다.
학생 G: “저는 1학기 후반부터 꽤 오랫동안 권태로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 어려웠고 계속 휘청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학 수업에서 본 영화들은 계속 제 기억에 남더라구요. 특히 이번에 본 영화에서 윤혁이 군가를 부르는 장면은 한동안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목표들을 세웠습니다. 망가져 가는 대로 될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성취를 느끼며 정신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느낌을 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또 다시 일상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오겠죠. 하지만 어쩌면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큰 슬럼프였던 시기를 지났다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H: “분노와 무기력이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며 내가 오직 바라보아야 할 소명에 목마른 요즈음이었다.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최선을 다했지만 혼나고, 파도처럼 닥쳐오는 시험들을 카페인에 절어 치러가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자존감을 잃어가는 인턴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의사 집단을 향한 많은 오해와 무분별한 비난을 읽으며 수시로 의욕을 잃고 분노하기도 했다. 욕을 먹어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나의 능력에 대해 실망하게 될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의미 있게 걸어갈 수 있는,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주변의 환경과 시선과 상관없이 나의 길을 가려면, 인정도, 가진 것도, 성취도 없는 죽음 앞에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 I: “수업을 들으며 썼던 소감문들이 나 스스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화가 나고 복잡했었던 마음들을 돌이켜 보고, 죽음 앞에서 나다운 모습을 찾고, 내가 왜 사는지 상기하고,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죽음은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그 죽음을 앞에 두고 섰을 때 가장 의연하고 평온한 나의 모습을 마주했나 보다.”

4. 향후 개선과제

1) 수강인원 확대 문제

본 수업의 가장 큰 한계는 수업인원의 제한이다. 교수자와 학생간의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는 대화식 피드백은 학생들이 꼽은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수업의 질적 관리를 위해서는 교수자 1인이 현재의 20명을 넘는 인원을 감당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죽음교육의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 그리고 그 긍정적인 효과를 감안한다면 필수과목이 되어 모든 학생들에게 교육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예과 2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의학의 이해’라는 과목에서 특강형식으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6차례의 수업을 통해 교수자와 직접 소통하며 죽음에 대해 탐구하는 것과는 사유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형식의 수업을 여러 교수자들이 동시에 개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다양한 주제의 의료인문학적 교육을 제공하는 선택식 수업의 취지를 생각할 때 이는 부적절하며, 교수자의 역량에 따라 일대일 피드백의 깊이와 전문성 역시 균일하지 못할 수 있다. 선택식 수업이 아닌 필수과목으로서의 죽음학에 대한 효율적 수업의 방식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지, 그리고 교수자의 역량과 자격에 대한 표준화된 정비가 필요하다.

2) 코로나시대의 비대면 수업

본 수업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영상을 활용하는 것인데, 저작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저작권법 제29조와 시행령 11조에 따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발행 6개월이 지난 상업영화의 경우 학교나 도서관에서는 별도의 저작권료 지불 없이 상영이 가능하다. 단, 반드시 영화사에서 필름을 대여하거나 직접 DVD 등의 영상매체를 구입하여 상영하여야 하며, VOD (video on demand) 스티리밍은 이용약관에 따라 제약이 될 수 있다. 문제는 2020년 시작부터 전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coronavirus disease 2019)’ 에 따라 갑작스레 대부분의 강의가 비대면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교 내 단체관람이 아닌 온라인 송출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공간을 학교공간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불어 비대면 수업이 대면 수업과 수업의 효과 및 만족도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도 중요하다. 2020년 수업은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에 추후 강의평가 자료를 분석하여 그 차이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3) 수업의 성과분석 및 장기적 효과에 대한 검증

본 수업은 6주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된다. 수업 후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긍정적이었으며, 수업 전과 후에 시행되는 설문지에서도 유의한 변화가 관찰되었다. 아쉬운 것은 4년째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강의평가와 설문지, 감상문을 통해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를 전체 학습성과와 시간별 학습성과로 구분하여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의 한계라고 할 수 있지만, 수업의 지속을 위해서는 이러한 교육학적 평가과정을 통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본 수업이 일시적 감동이 아닌 정체성의 확장을 통한 의료 현장의 문제해결을 지향하고 있기에, 학생들이 의사가 되어 실제 죽어가는 환자를 마주했을 때 얼마나 다른 인식과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 장기적인 효과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실제적 변화를 매개하지 못한다면 본 수업의 내용과 방법은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본 수업은 하나의 완성된 수업이 아닌 죽음에 대한 의료인의 정체성 갈등과 인간적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한 다급한 해결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의료현장에서의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널리 공유되어 죽음학 수업의 표준과정이 확립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토대로서 본 수업의 성과와 효과들을 검증하는 연구가 중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업에 대한 교육학적 평가와 매년 수집되고 있는 학생들의 감상문과 설문지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해석뿐만 아니라, 수업을 들은 학생들을 코호트 집단으로 하여 종적 연구를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본 수업은 삶과 죽음을 사유하면서 학생들이 고민과 갈등, 상처 등을 감상문을 통해 노출하기도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감상문들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한다면 수업의 개선을 넘어 의과대학 학생들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결 론

본과 1, 2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DMH 선택식 교육은 인문사회의학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사전검토를 거치면 교내 및 교외의 어느 누구라도 강의 개설을 신청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 시간만은 임상과목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관심 주제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체험을 하게 된다. ‘의대생을 위한 죽음학’은 2017년부터 매년 개설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다양한 영상물을 통해 타인의 ‘서사’를 공유함으로써 삶과 이어져 있는 죽음의 철학적, 사회학적 그리고 의료적 시각에서 그 현상을 해석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였다.
의대생을 대상으로 하는 죽음학 수업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죽음맞이 교육이나 교양과목으로서의 죽음학 수업과는 엄격히 차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직업적으로 생명지상주의의 선봉에서야 하고 그에 대한 법적, 윤리적, 양심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죽음이란 주제는 오늘날 유행하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의 차원에서 다뤄질 수 없는 정체성 갈등의 문제이다. 죽음을 낭만화하는 요즘의 풍조는 일반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하는 쉼일 수 있지만, 의료인들에게는 생명수호자로서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태만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므로 의대생과 의료인을 위한 죽음교육은 죽음에 대한 경계심과 부정성을 조심스레 가라앉히고 정체성의 확장을 유도하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논리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그런 의도에 따라 의대생을 위한 죽음학 수업의 바탕에는 죽음이 의료화되어 연명의료결정법이 탄생하기까지 대한민국의 사회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에서부터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랑크(Otto Rank)로 이어지는 콤플렉스와 자존감 투쟁이라는 정신심리학을 담고 있다[20]. 그리고 어네스트 베커(Ernest Becker)가 간파한,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영웅적 삶을 추구하는 인간 공동체의 문화적 특성과 이것이 뇌 속 편도체(amygdala)의 작동과 관련된다는 현대 사회심리학의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을 다룬다[21,22]. 더불어 그런 실존 불안을 다루는 성숙한 방어기제가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성공노화(successful aging) 이론과, 타인의 행동과 언어를 재해석하여 자기이해에 반영(reflection)하는 리쾨르(Paul Ricoeur)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까지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성숙과 관련된 폭넓은 인문학적 성과들을 통합하고 있다[23,24]. 매주 감상하는 선별된 영상물들과 임상현장의 실제 사례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론적 배경들을 현실적인 이야기로 체험하고 고민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수업의 목적은 세상에 내던져지듯 태어나 시간이라는 가능성과 떨쳐낼 수 없는 죽음불안을 동력삼아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하는 인간의 고독한 서사적 숙명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서사적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이야기의 결말이 보장될 때 비로소 생명이 의미를 찾고 영원한 쉼을 통해 자기 삶을 완성할 수 있다[25]. 이런 이해를 바탕에 둘 때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목적이 생물학적 생명 그 자체인지 아니면 삶의 서사적 가치인지를 학생들은 비로소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의료인들이 왜 종교처럼 생명수호에 전념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심리학적 이해까지 나아가게 되면 그들은 정체성의 혼란이나 포기 없이도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기존 의학교육을 통해 강화되었던 죽음에 대한 기계적 저항을 누그러뜨려, 죽어가는 환자를 인격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최종적으로 이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이기 이전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점검하도록 이끈다.
이런 변화의 조짐들은 학생들의 감상문과 설문지 분석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지난 수업들을 돌아볼 때 학생들은 숨 쉴 틈 없는 임상과목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민을 비켜가지 않고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해 주었다. 매주 강의와 영상을 통해 새롭게 열린 시각들과 다시 꼬리를 무는 의문들은 자유형식의 글로 교수자와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으며 사색작업을 이어나갔다. 개중에는 시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옥황상제가 되어 영화 속 인물에 대한 판결문을 적어 보내는 등 자유롭게 자신들의 감상을 표현하였다. 자신이 왜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는지 처음 마음을 상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학생들은 수업이 거듭되면서 과거에 겪은 상실에 대한 상처 치유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의 방황에 대한 탈출구를 찾기도 하였다.
이렇듯 학생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죽음을 가르치는 교수자는 일방향적인 지식전달자를 넘어 상호적 관계를 염두하고 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태도를 점검해야 한다. 임상현장에서 겪는 환자의 죽음에 대해 의료인은 자기보호적 편향과 해석을 거쳐 수용하게 되므로, 교수자가 이에 대한 냉철한 자기점검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편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나 형이상학적 관점에 치우친 교육은 실제 임상현장에서 도리어 혼란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한다. 이미 강조했듯 의료인에게 죽음이란 다가올 자신의 미래이자, 직업상 일상적으로 만나는 현재의 사건이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죽음교육은 죽음의 철학적 측면과 의료적 측면 모두를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의료현장에서의 혼란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의 모색으로까지 이어져야 하므로 교수자에게는 이러한 통합적인 성찰과 이해를 쌓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죽음교육을 진행하는 교수자는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기보다는 학생들의 감상과 해석을 통해 새롭게 깨닫고 배운다는 자세로 수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누구도 직접 겪은 이가 없고 결국 모두 간접적인 체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수자는 스스로 죽음의 극복자가 아닌 구도자임 을 상기하며 그 해석과 교육에 대해 늘 겸손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죽음교육의 목적은 학생에 앞서 교수자에게 먼저 작동되고 있어야 한다.
죽음이 의료화된 현대사회의 경향이 일순간에 바뀔 수는 없다. 결국 의료인은 현대인의 죽음에 늘 함께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죽음을 대하는 의학과 의료인의 태도에 따라 현대사회의 죽음문화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의료인은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과 맞서 싸우는 자이지만,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존엄한 죽음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자이기도 하다. 의대생을 위한 죽음교육은 이런 딜레마 같은 의료인의 역할이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정체성 안에 조화되는 데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의학교육으로서의 죽음교육은 단지 의대생에게 제공되는 인문학적 교양수업이 아니다. 기계적인 죽음이 양산되는 현대사회의 비인간화 경향의 최전선에서 혼란에 빠져 괴로워하는 의료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통로이며, 고도의 산업발전과 생존경쟁에서 잃어버린 우리사회의 인간적인 죽음문화를 정초하는 용기 있는 발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 기여 박중철: 자료수집, 원고 작성, 참고문헌 작성, 전반적인 논문 작성 활동 수행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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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ces

부록 1.

의대생을 위한 죽음학 6주 수업의 주제와 내용

수업 주제 및 영상물 소개
1주차 ■ 죽음의 가치: 죽음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 에디냐와 함께 한 4년(2016, 한국)
삶의 절망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던 방송국 PD가 강릉 갈바리 호스피스에서 4년간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말기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2주차 ■ 죽음의 철학: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 2014, 미국)
시한부 삶을 사는 10대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그리고 가족들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다양한 실존철학의 주제들이 등장한다.
3주차 ■ 죽음의 윤리: 삶은 권리인가, 의무인가?
■ 씨 인사이드(The Sea Inside, 2004, 스페인)
라몬은 경추손상으로 26년간 사지마비로 살아왔다. 이제 그는 삶의 감옥으로부터 존엄한 죽음이라는 해방을 원한다. 스페인의 안락사 논쟁을 가져왔던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이다.
4주차 ■ 죽음의 현상학: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2016, 한국)
암이 재발되자 26살 윤혁은 병실을 나와 3,500 km 유럽 자전거 일주에 도전한다. 죽음에 맞선 고독한 자존감 투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5주차 ■ 죽음과 공동체: 죽음은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공유되어야 하는가?
■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Lars and the Real Girl, 2007, 미국)
부모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고립되어 살던 라스가 어느 날 인형을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오고, 이웃들은 판단을 미룬 채 그를 수용한다.
6주차 ■ 죽음의 주체성: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 엔딩노트(Ending Note, 2011, 일본)
갑자기 위암말기 진단을 받은 60대 가장. 그 날로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소소한 삶의 마지막 과제에 나서고, 딸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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