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 엔지니어
The Civilized Engineer
Article information
저서: 교양있는 엔지니어
저자: 새뮤얼 C. 플러먼 저
역자: 문은실 역
원제: The Civilized Engineer
출판사: 생각의나무
쪽수: 371쪽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문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로 인문학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과학재단이 내놓은 ‘21세기 과학교육을 위한 백서’는 21세기 과학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성교육과 인문교육을 강조하였다. ‘과학적 상상력’이 고갈된 과학의 위기 돌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학적 사고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적 사고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지금 과학의 전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월 가의 탐욕과 그로 인한 세계경제의 위기, 글로벌 경쟁력 추구와 그로 인한 국가 간 빈부 격차확대 및 국제분쟁과 종교갈등을 경험하면서,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정의란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였고,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경영,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 삶의 질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행동이 단순한 경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감정과 욕구가 관여하며,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목격했듯이 감성이 기술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예지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음을 경영자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문 ∙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적 지식, 교양이 단지 여유 있는 자들의 지적 사치나 쓸모없는 관념적 유희가 아니라 그 자체가 경쟁력이며 생존전략이라는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용성에 밀려 고사되어가던 인문학교육이 지극히 실용적인 요구에 의해 다시 중흥되는 역설적 현상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의학교육에서의 인문학교육 역시 실용적 요구에 의해 도입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의학분업 사태는 인문학교육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들의 주장에 대해 동의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국민 대다수가 의사들을 의사선생님이 아닌 의료기술자 내지는 의료자영업자로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원인이 의사들의 인문학적 소양 부족, 즉 의사소통능력과 프로페셔널리즘의 부재, 공감능력과 윤리의식의 결여 등에서 비롯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의학교육계는 이때부터 학생교육에서 의료인문학 내지는 인문사회의학교육을 필수과목으로 포함시키도록 하였고, 그 당시까지 인문학교육에 회의적이거나 냉소적이었던 의료계 혹은 의학교육계 내부의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의과대학이 인문학과목을 정규 교과목으로 운영하게 되었고 인문학 전공 교수를 임용하는 대학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총론에서의 이러한 긍정적 변화와 달리 각론에서는 아직도 의과대학 교수들을 비롯하여 많은 의사들이 의사들과 인문학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인문학교육을 통해 인성이 개발될 수 잇는지, 힘겨운 의학교육과정 속에 굳이 인문학교육까지 추가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때로는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인문학교육의 도입을 주장하던 나에게는 그들에게 인문학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보다 설득력 있는 자료가 절실히 필요했다.
새뮤얼 C. 플러먼의 책 ‘교양있는 엔지니어’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설득력 있는 자료였다. 다트머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건설회사 경영자이자 미국 국립엔지니어아카데미 의장을 역임한 원로 공학자이다. 1942년에 공과대학에 입학했던 그는 이후 70년간 공학교육에서 인문학교육이 사라지고 철저한 기술교육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흥미와 자기 성취를 위해 공학을 선택하던 학생 대신에 취업기회와 부유한 생활을 꿈꾸며 입학하는 학생들로 바뀌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도 졸업을 하고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엔지니어들이 모이면 한결같이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좀 더 기술적인 강좌를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0년 정도 경력을 쌓고 나면 비즈니스와 경제학에 대해 좀 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다시 10년이 흐른 40대에 이르러 그들은 리더십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면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문제는 공학교육자들 사이에 인문학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한정된 교육과정 속에서 인문학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공학교육자들은 교양과정이 엔지니어 교육의 필수라고 믿었다. 1867년 MIT의 기계공학 프로그램은 1/3이 언어와 인문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학지식의 기하급수적인 성장과 기술적 요구에 대한 증가와 더불어 상황은 급속히 변화하고 말았다. 기술적 내용의 교과목이 증가하였고 교양교육은 강제로 통폐합되었다… 마침내 공학교육의 완전한 직업교육화를 막기 위해 공학교육관련 지도자들은 공인 커리큘럼에서 최소 12.5% (6과목)은 교양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하지만 그나마 이 6과목도 문학, 역사, 철학 등 ‘쓸모없는”인문학보다는 ‘유용한’ 사회과학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공과대학원 과정은 100% 기술강좌로만 이루어져 있다… 너무나 많은 엔지니어와 공학교육자들이 ‘교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롱당하는 것에 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학교육 기간이나 교양과목 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플러먼은 공학 분야에서도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엔지니어가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역설적이게도 공학의 기술적 내용이 성장함에 따라 엔지니어가 말과 글로써 명확히 표현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듣고 이해하고 설득하고 강조하는 일도 늘어났다… 오늘날의 공학은 예전보다 더욱 집단적인 일, 팀 차원의 노력이 되어버렸다. 공대 출신이 아닌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성공, 또는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기업에 들어가는 엔지니어는 십중팔구 이력의 일정부분을 변호사, 소비자, 국회의원, 판사, 관료, 환경보호주의자,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술을 설명하는 데 할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엔지니어, 간결하고 효율적이며 설득력 있게 쓸 수 있는 엔지니어, 중동이나 아프리카, 중국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더라도 문화적 충격에 빠지지 않을 엔지니어를 필요로 한다.”
플러먼이 말한 인문학교육의 필요성은 의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오하이오 의과대학의 설립자인 다니엘 드레이크는 “아무리 의학지식이나 기술이 훌륭해도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모른다면 신사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존스 홉킨스 의대 초대학장이었던 윌리엄 웰치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은 입학 전 교육이나 문화적 소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 플러먼 역시 인문학적 소양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하고 있다. “AT&T 의 한 연구에 의하면 엔지니어들이 중역에 오를 가능성은 인문-사회계 졸업생의 절반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디슨 전기 연구소가 20개의 공공기업체를 조사한 결과 대상 기업 모두가 인문학에 대해 좀 더 폭넓은 기초지식을 가진 엔지니어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러먼은 또한 문화적 교양을 갖춘 ‘고결한’ 엔지니어들이 사라지면서 엔지니어의 지위도 하락했음을 지적한다.
인문학, 인문교양과목은 무지와 독단으로부터 정신을 해방시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학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은 고귀한 품성과 합리적 사고, 관용과 성찰력, 그리고 예지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다. 인문학교육의 필요성을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설득한다는 그 자체가 불편하고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은 실용적 이득을 좇아서라도 인문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인문학의 매력 그 자체에 흠뻑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이 책 ‘교양있는 엔지니어’는 한 고결한 엔지니어의 인문학에 대한 사랑을 잘 드러내주고 있으며 동시에 공학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도 절절히 묻어나는 책이다. 우리가 인문학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가 의학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의사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