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에서 문학과 예술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재구성: 취약성의 미학과 돌봄의 해석학

Reconceptualizing the Role of Literature and the Arts in Medical Education through Vulnerability and Care

Article information

Korean Med Educ Rev. 2026;28(2):106-117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6 June 30
doi : https://doi.org/10.17496/kmer.26.009
Department of Medical Humanities, Jeju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Jeju, Korea
황임경orcid_icon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Corresponding author: Im Kyung Hwang Department of Medical Humanities, Jeju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15 Aran 13-gil, Jeju 63241, Korea Tel: +82-64-754-8110 E-mail: hikrad@jejunu.ac.kr
Received 2026 March 2; Revised 2026 April 20; Accepted 2026 April 28.

Trans Abstract

This paper reconsiders the conceptual foundations of vulnerability and care in medical education by repositioning literature and the arts within a hermeneutic framework. In dominant models, vulnerability has often been construed as a condition of deficiency requiring correction, whereas literature and the arts have been justified instrumentally as tools for cultivating empathy. This paper challenges both assumptions. Drawing on hermeneutics and recent critiques of empathy-centered medical humanities, this paper argues that vulnerability is not a stable attribute but an event-like phenomenon that emerges situationally within clinical encounters. Vulnerability first manifests through sensory and affective registers before being organized into medical knowledge or ethical judgment. This affective attunement constitutes an irreducible dimension of clinical perception that biomedical frameworks cannot fully accommodate. Rather than a problem to be resolved, vulnerability functions as an interpretive excess that solicits response. Care is accordingly reconceptualized not as the expression of correct emotional dispositions or standardized procedures, but as an interpretive practice—a form of phronesis—in which the meaning of vulnerability is apprehended within its singular context. Empathy may initiate moral responsiveness, but it cannot substitute for the interpretive process that affective attunement demands.

These arguments are developed through an analysis of the parallel chart, understood as a site where students encounter patients’ vulnerability yet struggle to translate experience into clinical understanding. The paper concludes by examining the educator’s role in sustaining this interpretive space and argues that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is constitutive of, rather than ancillary to, clinical judgment and professional formation.

서론

의료인문학은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기술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된 현대의학 및 의학교육에 대한 성찰적 응답으로 등장하였다. 진단 및 치료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공고해진 생의학 패러다임은 질병의 원인 규명과 치료 효율성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의료가 다루는 삶의 맥락과 인간적 의미를 점차 주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60–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생명윤리, 의철학, 문학과 의학 등이 태동하였고, 이후 의료사회학 및 인류학,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 예술과 의학 등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며 ‘의료인문학(medical humanities)’이라는 학술적·교육적 실천의 장이 형성되었다[1]. 이 과정에서 의료인문학은 단순히 과학기술 중심 의학교육을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의사 및 의과대학생을 사회적·윤리적 행위자로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교육과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의사 파업 사태를 계기로 의료인문학 교육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1]. 이 사태는 의료정책을 둘러싼 이해충돌을 넘어 의료전문직의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 의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수면 위로 올렸으며, 그 응답의 하나로 의료인문학이 의학교육의 공식 영역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의료인문학은 의과대학 평가인증체계에 편입되어, 현재는 모든 의과대학에서 운영하도록 기본 기준에 명시되어 있다[2]. 그러나 의료인문학의 제도적 정착이 의료현장과 사회 사이에 누적되어 온 긴장을 실질적으로 완화했는지는 선뜻 단정하기 어렵다. 최근 다시 불거진 의정 갈등과 그 과정에서 노출된 의료계 내부의 균열, 그리고 의료계와 사회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인식의 간극은 한국 의료와 의학교육 내부에 잠재해 있던 모순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그 양상 또한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음을 환기한다.

문제는 이러한 모순과 긴장이 단지 이해관계의 충돌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정 갈등의 진행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은 의료계와 사회는 물론, 의료계 내부에서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였다. 이는 정보의 부족이나 설득의 실패를 넘어 의료가 무엇을 다루고, 의사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적 해석의 틀이 서로 다르게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3]. 다시 말해 현실의 갈등은 문제의 규정을 둘러싼 차이를 넘어 의료의 본질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의 충돌로도 나타났다. 이 점에서 의료인문학 교육은 외부 규범을 추가로 부과하는 장치이기 이전에 의료실천과 의료전문직 정체성이 형성되는 조건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교육적 장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의료인문학 교육을 이처럼 재정의할 때 중심에 놓이는 것은, 병을 앓는 이가 의료를 요청하게 되는 조건을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취약성(vulnerability)이다. 이 논문에서 취약성은 병을 앓는 개인이나 집단이 지닌 고정된 속성이나 단순한 결핍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임상적 만남의 장에서 관계적·상황적으로 발생하는 경험의 양식, 다시 말해 질병과 고통, 불확실성 앞에서 인간 존재가 노출되는 방식이다. 물론 취약성은 환자에게만 한정된 속성은 아니다. 의료인 역시 감정적 소진, 판단의 불확실성, 제도적 압박, 도덕적 갈등 등 다양한 조건 속에서 취약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라는 실천이 성립하는 최초의 계기이자 근본 조건은 병을 앓는 이의 취약성에 있다. 누군가의 상처, 고통, 기능의 손상, 삶의 위태로움이 도움을 요청하게 만들고, 바로 그 요청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응답으로서 의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은 의료인의 취약성보다는 의료의 존재 이유와 발생조건을 이루는 더 근원적인 차원인 환자의 취약성에 분석의 초점을 둔다.

이처럼 환자의 취약성이 의료의 근본적 조건을 이루는 만큼, 질병과 노쇠, 죽음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환자의 취약성은 단순히 보호하거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고통 속의 인간 존재가 필연적으로 드러내는 체현의 양식이며, 의학교육에서 충분히 성찰되지 않을 때 이해의 공백으로 되돌아오는 문제의 지점이 된다. 특히 취약성은 개념적 정의나 규범적 판단만으로는 온전히 포착되기 어렵고, 종종 감각적 장면이나 서사적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문학과 예술은 의료가 마주하는 취약성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이해되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교육적 매개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논문은 ‘취약성’과 ‘돌봄’이라는 두 개의 핵심 개념을 중심에 두고 해석학적 관점을 경유하여 의학교육에서 문학과 예술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세 단계의 논증을 순차적으로 전개한다. 첫째, 취약성을 의료 미학(medical aesthetics)의 차원에서 재사유한다. 기존 의학교육과 생명의료윤리 담론에서 다뤘던 방식과는 달리, 취약성이 사전에 규정된 범주로 포착되기 이전에 감각적·정동적으로 먼저 드러나는 사건적 경험임을 논증한다. 이러한 경험은 이해되기 전에 먼저 감응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즉각적인 판단이나 해결을 요구하기보다 이해와 해석을 요청하는 계기로 작동함을 밝힌다. 둘째, 이러한 감응이 의미 있는 임상적 응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해석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는 점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돌봄을 해석적 실천으로 재정의한다. 공감이나 연민은 돌봄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교육이나 실천의 종착점으로 설정될 때 해석의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이 논문에서는 돌봄이 올바른 감정을 느끼거나 정해진 절차를 수행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응답하는 프로네시스(phronesis)의 문제임을 논증한다. 셋째, 이 두 논점을 바탕으로 의학교육에서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위치를 재구성한다. 그동안 문학과 예술은 주로 공감능력 향상과 감수성 교육의 도구로 정당화되어 왔으나, 이 논문에서는 문학과 예술이 취약성의 감응을 즉각적인 반응으로 닫지 않고 이해를 지연시키며 해석을 요청하는 교육적 장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을 논증한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서사의학의 핵심 교육장치인 ‘평행 차트(parallel chart)’를 분석사례로 삼는다. 이를 통해 “취약성의 사건적 드러남-의료 미학적 감응-해석적 실천으로서의 돌봄”으로 이어지는 교육적 도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논증을 통해 의학교육이 과학기술 중심의 역량 교육을 넘어 의료가 직면한 상처와 균열을 성찰할 수 있는 이해의 공간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취약성의 미학: 드러남과 감응의 인식론

취약성 개념은 생명의료윤리와 의학교육 담론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었다. 가장 널리 통용되어 온 정의는 취약성을 자율성(autonomy)의 대립항 혹은 하위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4]. 이 관점에서 취약성은 자율성이 결핍되어 있거나 부족하여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되며, 이는 자율성을 중심원리로 삼아온 근대 자유주의의 이념에 근거한다[4]. 따라서 취약한 개인이나 집단은 위험요인이자 추가적인 보호 혹은 관리의 대상으로 규정되었고, 이러한 규정은 연구윤리나 임상윤리의 규범적 틀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결핍 중심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이루어져 왔다. 이를테면 ten Have [4]는 취약성을 두 차원에서 재정립한다. 하나는 신체를 지닌 존재로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노출되는 상처 입을 가능성으로서의 보편적·인간학적 취약성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에 의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불균등하게 부과되는 상황적 취약성이다. 이러한 관점은 취약성을 예외적 상태나 개인의 결핍으로 환원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경험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취약성 담론을 보호와 관리의 논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윤리적·존재론적·정치적 지평에서 사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또한 Luna [5]는 취약성을 특정 집단에 고정적으로 부여되는 ‘꼬리표(label)’가 아니라 다양한 조건들이 중첩되며 형성되는 ‘층위(layers)’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이 관점에서 취약성은 사전에 규정된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들이 특정 상황 속에서 포개지면서 발생하는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취약성을 관계적·상황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취약성 담론이 고정된 분류와 관리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함을 시사한다. 다만 이들 논의는 주로 윤리적·사회적 차원에서 취약성을 재개념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의료현장에서 취약성이 실제로 어떻게 감각적·정동적으로 경험되고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러한 드러남이 의학교육에서 어떤 교육적 의미를 갖는지는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은 취약성 논의를 임상적 만남의 장면으로 가져온다. 의료현장에서 취약성은 사전에 규정된 범주에 따라 일관되고 고정적으로 포착되기보다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발생하며, 당사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결정성’의 경험으로 나타난다[6]. 환자의 취약성은 예상치 못한 진단을 받는 순간, 의료인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 치료에 관한 결정 앞에서의 망설임과 같은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취약성은 이해되거나 설명되기 이전에 먼저 느껴지고 의료행위의 장(場)안에서 긴장과 불확실성을 유발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취약성을 규범적 분류나 윤리적 판단의 출발점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양상, 즉 미학적 차원에서 재사유하고자 한다. Bleakley [7]가 주장했듯이, 이 맥락에서 미학은 예술이론을 의미하기보다는 의료 영역에서 감각과 감응의 역량을 정교하게 기르며 임상적 판단과 통찰을 형성하도록 하는 교육적 양식, 즉 의료 미학을 가리킨다. 이때 취약성은 즉각적인 판단이나 해석으로 수렴되기보다 감응을 발생시키는 사건으로 경험된다. 물론 이 접근은 기존의 규범적·윤리적 취약성 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 취약성이 어떻게 경험되고 감응되는지를 드러냄으로써 돌봄을 해석적 실천으로 재사유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장에서는 취약성이 의료현장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살펴보고, 왜 그것이 의학 지식만으로는 충분히 포착될 수 없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1. 의료현장에서 취약성의 경험적 드러남

이 절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취약성은 의료현장의 경험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 이 질문은 취약성을 하나의 개념이나 속성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취약성이 실제 의료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환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생명의료윤리 담론이나 의학교육의 제도적 장치 속에서 취약성은 흔히 고정된 속성이나 상태로 이해되어 왔다. 예컨대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강조되는 평등원칙은 성별,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사회경제적 지위와 무관한 동등한 대우를 의미한다[2]. 이러한 원칙은 특정 집단을 ‘취약한 집단’으로 범주화하고, 그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취약성을 사전에 규정된 특성으로 환원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나타나는 취약성의 발생조건과 드러남의 양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취약성은 이미 주어진 범주로 인식되기 이전에 특정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발생의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취약성을 노출(exposure)의 경험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4]. 진료실에서 자신의 신체와 삶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순간, 환자는 통제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때 취약성은 단순히 신체적 약화나 질병의 심각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판단을 위임해야 한다는 의존성,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모두 의료라는 장에 노출되었을 때 함께 발생하는 취약성의 핵심 조건들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취약성이 항상 관계적이고 상황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취약성의 양상은 달라진다. 평소에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가던 사람도 응급실의 침대 위에서는 의료진의 판단과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이때 취약성은 개인의 결핍을 드러내기보다는 의료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비대칭성과 불확실성을 가시화한다. 취약성은 개인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이 구성될 때 함께 발생하는 관계적 효과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료현장의 취약성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사건’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취약성은 이미 규정된 상태로 있기보다는 특정 순간에 발생하며 감각적으로 인지되고 정동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환자의 침묵과 곤혹스러운 표정, 혹은 의료진이 느끼는 망설임과 긴장은 취약성이 개념화되기 이전에 감성적·정동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드러남은 아직 윤리적 판단이나 보호의 논리로 조직되지 않은 상태이며, 오히려 이해와 해석을 요구하는 미해결의 상태를 형성한다.

따라서 취약성을 경험적 드러남의 관점에서 사유한다는 것은, 취약성을 분류와 관리의 대상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감각적으로 나타나며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취약성을 윤리적 판단의 전제라기보다 해석의 요청으로 재위치시키며, 돌봄을 규칙이나 기술이 아닌 해석적 실천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2. 미학적 인식과 의학적 앎의 긴장

의료현장에서 취약성은 고정된 속성이라기보다는 경험 속에서 사건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때, 그리고 이러한 드러남은 대개 설명되기 이전에 먼저 감각적으로 인지되고 정동적으로 경험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왜 이러한 취약성의 경험은 의학 지식으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미학적 인식과 의학적 앎 사이의 긴장을 검토해야 한다.

생의학에 기반을 둔 의학적 앎은 실증주의와 환원주의에 기반하여 객관성, 측정 가능성, 재현 가능성 등의 핵심 기준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8]. 이 기준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 예후 판정과 같은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가능하게 했으며, 현대의학의 과학적 정당성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앎의 형식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방식의 대상화에 의존한다. 신체는 수치와 영상으로 환원되고, 증상은 범주화되며, 불확실성은 통계적 확률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의학 지식은 무엇이 질병인지, 어떤 개입이 효과적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지만, 환자와 의료인이 경험하는 취약성의 전모를 포착하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이와 대비되는 것은 미학적 인식이다. 앞서 밝혔듯이, 의학적 맥락에서의 미학적 인식, 즉 의료 미학은 예술감상의 영역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의료실천 속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형성하는 감각적·정동적 훈련의 교육적 양식을 가리킨다[7]. 따라서 취약성은 의료 미학이 작동하는 핵심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학적 인식은 의학적 판단에 즉각적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진단과 설명이 상황의 의미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의학적 판단을 잠정적으로 멈추게 하는 인식의 잉여로 작동한다. 이러한 멈춤은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보다 상황이 아직 이해의 언어로 조직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정동적 징후에 가깝다. 하지만 이러한 미학적 인식은 의료상황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취약성은 이해되기 이전에 먼저 감응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감응’은 흔히 의학교육에서 강조되어 온 공감(empathy)이나 연민(compassion)과는 구별된다. 공감이 인격을 성찰대상에 투사해 완전하게 이해하는 능력으로, 연민이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위로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반응으로 이해된다면[7], 여기서 말하는 감응은 이질적인 것과 마주침을 느낄 수 있고 그 만남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 즉 인지적 판단이나 규범적 평가에 앞서 발생하는 정동적 반응을 가리킨다[9]. 감응은 ‘affect’의 번역어로 국내 학계에서는 통상 ‘정동(情動)’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 반응이라는 의미를 보다 잘 포착한다는 판단 아래 최진석 등의 번역에 따라 ‘감응’으로 사용한다[9]. 이때 ‘정동적’이라는 수식어는 감응과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그 affect적 성격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감응은 내가 타자를 이해하기로 선택하거나 의도한 결과라기보다는 취약성과 마주치는 순간, 나에게 먼저 도달하고 영향을 미치는 경험에 가깝다. 그것은 판단이나 행동의 종착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마주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마주침의 상대가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에 대한 해석을 요청하는 출발점에 해당한다[10].

따라서 감응의 차원은 의학 지식과 직접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지만, 그 범위 바깥에 있다. 취약성은 의학적 앎 속에서 완전히 제거되거나 해결되지 않고 항상 지식의 잉여로 남는다. 이는 의학 지식이 불완전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취약성이 본질적으로 관계적이고 상황적이며 시간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즉 취약성은 의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오류나 예외가 아니라 의학적 설명이 다다를 수 없는 차원에서 발생한다.

문학과 예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학적 서사와 예술적 재현은 취약성을 개념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감각적으로 드러나고 정동적으로 경험되는지를 가시화한다. 독자나 관람자는 취약성을 분석하기 이전에 먼저 마주하고,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취약성을 단순한 정보나 사례로 소비하지 못하게 하며 이해를 지연시키고 해석을 요구한다. 이때 문학과 예술은 취약성의 잉여를 제거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논의가 의학 지식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의학에서의 미학적 인식은 의학적 앎이 작동하는 조건과 한계를 더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의료 행위에 요구되는 이해의 층위를 확장한다. 취약성이 정동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의료는 정확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경험과 어긋나는 판단을 내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취약성이 정동적으로 감응될 때, 핵심적인 문제는 이 감응이 의료실천과 의학교육 속에서 어떻게 이해와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이다. 이는 취약성에 대한 응답을 단순한 태도나 기술이 아닌 해석의 문제로 다시 사유할 것을 요청한다. 즉 돌봄을 해석학적 실천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요구하는 것이다.

돌봄의 해석학: 이해로서의 임상적 실천

앞 장에서는 취약성이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경험 속에서 드러나며, 왜 그것이 의학 지식만으로는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지를 의료 미학의 차원에서 검토하였다. 취약성은 객관적 정보로 환원되기 이전에 감각적·정동적으로 감응되며, 이러한 감응은 이해와 판단을 요청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그러나 취약성이 감응의 차원에서 드러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것이 의료실천과 의학교육에서 어떻게 책임 있는 판단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취약성에 대한 돌봄은 이해의 문제, 보다 정확히는 해석의 실천으로 다시 사유해야 한다. 의료현장에서 돌봄은 종종 태도, 덕목, 혹은 감정의 문제로 환원되어 논의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돌봄이 작동하는 핵심 지점, 즉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고, 그 이해에 따라 응답해야 하는 판단의 순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돌봄이 단순한 선의나 기술적 수행을 넘어서는 이유는, 그것이 언제나 해석을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석학은 돌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한다. 해석학은 이해를 중립적 인식이나 규칙 적용의 결과로 보지 않고, 역사적·상황적 조건 속에서 의미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응답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을 의료에 적용하면, 의료실천은 객관적 원리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절차가 아니라 의료인과 환자가 대화를 매개로 하여 하나의 공유된 해석의 장 속에서 질병과 몸의 의미를 함께 형성해 가는 만남으로 이해할 수 있다[11].

이 장에서는 먼저 해석학의 이러한 기본 전제를 의료적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이해의 상황성이 임상적 판단에서 갖는 의미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돌봄을 취약성의 감응 이후에 도래하는 해석적 실천으로 위치시키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1. 의료실천에서 이해의 상황성과 해석학적 조건

해석학의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이해가 결코 중립적이거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나 특정한 언어, 역사, 관습, 그리고 선이해 속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 G. Gadamer)가 강조하듯이,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려 할 때 저자와 우리가 놓여 있는 지평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분리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것은 영향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11]. 따라서 이러한 지평들을 가깝게 만드는 융합의 과정을 통해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선입견은 극복되어야 할 오류라기보다 이해가 가능해지는 조건이다. 어떤 이해도 무에서 출발할 수는 없으며 특정한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전개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는 주어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해석의 과정이다[11].

이러한 해석학적 이해 개념은 의료 상황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학적 판단은 언제나 불확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며, 동일한 임상지침이나 지식이라 하더라도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다. 환자의 병력, 삶의 맥락, 가치와 기대, 그리고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관계는 매번 다른 판단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학적 판단과 해석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때 해석은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환자의 지평과 의료인의 지평을 융합하여 지금-여기의 상황에 응답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의료현장에서의 해석학적 이해는 언제나 책임을 수반하며, 상황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능동적 수용성을 포함한다.

이해의 상황성을 강조하는 해석학적 관점은 의료를 불완전한 과학으로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실천의 실제 조건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시간의 흐름 앞에 불확실하며 단일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칙이나 지침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응답할 수 있는 해석적 능력이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학적 이해 개념은 앞 장에서 논의한 취약성의 감응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취약성은 이해 이전에 감응의 형태로 먼저 나타나지만, 그 감응이 의미 있는 돌봄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해석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학적 이해가 항상 가능하다고 전제할 수는 없다. 해석학적 이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서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장면은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이때 문제는 개별 의료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공감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학적 자원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이 요구된다는 점에 있다. Fricker [12]가 ‘해석학적 부정의’라는 개념을 통해 지적했듯이, 집단적인 해석학적 자원의 격차로 인해 어떤 경험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서 불공정한 불이익을 받고 사회적으로 의미화되지 못한 채 남는다. 이 논의를 의료 맥락에 적용할 경우, 환자의 취약성이 반복되는 질문이나 침묵, 혹은 설명의 어긋남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의료적 권위에 의해 발생하는 해석학적 공백의 징후로 이해될 수 있다[13].

문제는 이러한 공백이 단지 환자 쪽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교육과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임상 문제를 해결하고 수행해야 할 표준화된 지식과 기술은 충분히 교육받지만, 취약성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어떤 이해를 요청하는지에 대한 해석학적 자원은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임상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임상실습에서 학생이 처음으로 환자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은 이러한 해석학적 자원의 결핍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사례일 것이다[14]. 죽음은 활력징후의 소실이나 뇌사 판정과 같은 임상적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임상실습 중 처음으로 죽음의 장면에 놓인 학생에게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으로 다가온다. 학생은 그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느낌이 예비 의료인으로서 적절한 것인지, 그리고 눈앞의 상황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언어와 틀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의학교육은 죽음을 임상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가르칠 뿐 죽음의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감응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의미에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학적 자원은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그 결과 상황에 응답해야 하는 책임은 학생 개인에게 전가되지만, 그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 이해의 조건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학생은 자신의 반응이 적절한 것인지조차 판단하지 못한 채, 감응된 경험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처럼 해석학적 부정의는 의학교육이 어떤 이해능력을 아직 충분히 길러주지 못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돌봄을 단순한 태도나 기술이 아니라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의미에 따라 응답하는 해석적 실천으로 다시 사유할 필요성을 요청한다.

2. 돌봄을 해석적 실천으로 다시 사유하기

앞 절에서는 이해가 언제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적 응답이라는 점을 의료적 맥락에서 검토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돌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돌봄은 왜 기술이나 태도 이전에 해석적 실천이어야만 할까?

의료 영역에서 돌봄은 표준화된 의사소통 절차와 기술을 익히는 문제, 혹은 공감과 연민을 갖춘 태도의 문제로 환원되어 치료의 주변적 요소로 배치되곤 한다. 이러한 접근은 돌봄이 실제로 작동하는 장면의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절차와 기술은 언제나 일반화된 규칙을 전제하며, 감정과 태도는 주체의 내적 상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 돌봄이 요청되는 순간은 대부분 규칙의 적용이나 감정적 반응만으로는 충분히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돌봄은 효율성과 공감 사이에서,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반복적인 일과 임시변통으로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그래서 불확실성과 책임 속에서 수행되어야만 하는 관계적 노동이기 때문이다[15].

따라서 해석학적 관점에서 돌봄은 환원적 이해를 넘어선다. 돌봄은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거나 올바른 감정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이해에 따라 응답하는 실천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앞서 논의했듯이, 취약성은 의학 지식으로 완전히 포착되기 이전에 정동적으로 감응되며, 이러한 감응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기보다 해석을 요청한다. 돌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즉 돌봄은 취약성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해석적 노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돌봄은 취약성에 대한 해석적 응답으로 규정될 수 있다. 환자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망설임이 단순한 비협조인지 아니면 이해되지 않은 불안의 표현인지, 설명의 시점과 방식이 왜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은 모두 해석의 문제이다. 여기서 돌봄은 외부의 규범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황이 제기하는 의미를 읽고 그것에 맞게 응답하는 실천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돌봄의 성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 개념을 통해 철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프로네시스는 보편적 원칙을 적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별하고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통해 선을 실현하는 실천적 지혜를 가리킨다[16]. 취약성에 응답하는 돌봄은 바로 이러한 성격을 지닌다. 동일한 의학 정보를 주더라도 어떤 선택이 환자에게 의미 있는지는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돌봄은 이처럼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며, 따라서 기술적 수행일 뿐만 아니라 해석적 실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취약성과 해석이 서로 분리된 단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취약성은 해석을 요청함으로써 비로소 돌봄의 문제로 등장하며 해석은 취약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즉 취약성은 해석을 통해 의미를 획득하고 해석은 취약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응답할지를 방향 짓는다. 이러한 상호 구성의 관계 속에서 돌봄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가는 실천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감이나 연민은 돌봄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돌봄의 핵심은 정동적 감응 이후에 요구되는 적절한 이해와 해석에 있다. 이는 환자의 경험을 자신의 감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제기하는 의미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돌봄은 감정의 진정성보다 이해의 적합성과 판단의 책임성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이처럼 돌봄을 해석적 실천으로 사유하는 관점은 의료를 비인격적 기술로 환원하는 접근과 감정 중심의 인간적 태도로 이상화하는 접근을 모두 넘어서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만 이러한 해석학적 돌봄은 추상적 원리로 제시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환이 의료실천과 의학교육의 실제 장면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학습될 수 있는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과 예술은 취약성의 감응을 해석의 문제로 전환하는 교육적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의학교육의 해석학적 장

의학교육에서 문학과 예술은 환자의 관점을 이해하고 보다 인간적인 의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도입되었다[1]. 그러나 이러한 교육적 정당화는 문학과 예술의 역할을 주로 공감과 감수성의 증진이라는 한 가지 효과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문학과 예술은 임상적 판단과 돌봄의 의미를 해석하는 핵심적인 학습장이라기보다는 공감과 감수성을 보완하는 인성 교육의 보조적 수단으로 축소되어 이해되기 쉽다.

이 장은 이러한 제한적 이해를 다시 검토하고, 문학과 예술을 의학교육의 해석학적 장으로 다시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문학과 예술을 ‘공감훈련’으로 환원하는 접근의 한계를 검토한 뒤,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취약성의 감응을 이해의 지연과 해석의 요청으로 전환하는지를 정식화한다. 이를 통해 문학과 예술이 단순히 감정을 자극하는 교육자원이 아니라 돌봄의 해석학을 학습하게 만드는 구조적 조건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1.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재위치: 공감에서 해석으로

왜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의미를 공감 증진이라는 목표로만 한정해서는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공감의 중요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감은 환자의 고통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능력으로서 의료전문직 형성에 있어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공감은 앞 장에서 논의한 감응과 무관하지 않다. 감응이 취약성과 마주침에서 먼저 발생하는 정동적 반응이라면, 공감은 그러한 감응을 바탕으로 타자의 경험에 인지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감은 돌봄의 중요한 계기이며 감응과 해석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절에서 비판하는 것은 공감 자체가 아니라 공감을 문학과 예술교육의 핵심 목표이자 종착점으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공감이 교육의 최종 성과로 규정될 때, 감응 이후에 요구되는 해석의 과정은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채 생략되기 쉽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잠재력이 축소된다.

첫째, 공감 중심의 접근은 타자의 경험에 대한 이해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문학작품을 읽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학습자로 하여금 환자의 관점에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강력한 교육적 장치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논의들은 공감이 항상 환자의 관점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이끌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타자의 입장을 상상하는 노력 자체가 이해의 정확도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의 틀 속에서 타자를 재구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적 공감은 보편적이고 자동적인 능력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작동하며, 오히려 타자의 경험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려는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17].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문학적 서사나 예술적 재현이 불러일으키는 강한 정서적 몰입 역시 타자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감정 속에서 빠르게 이해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공감이 유일한 교육목표로 설정될 때 문학과 예술은 감정표현을 훈련하는 도구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의료인문학 교육에서는 문학과 예술작품에 관한 토론이나 글쓰기가 공감능력 향상의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었다. 그러나 공감을 표현 중심의 의사소통기술로 가르치려는 시도는 공감을 실제 이해의 과정이 아니라 수행의 기술로 표준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작품을 통해 환자의 경험을 성찰하기보다 공감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을 학습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진정한 이해의 확장이라기보다는 공감의 형식적 수행을 강화하는 소위 ‘거짓 공감(fake empathy)’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18]. 한편, 공감을 기술과 태도로 가르치려는 교육에 대해 학생들이 그 효과를 불신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생들은 공감이 의학교육을 통해 길러진다기보다는 개인적인 성장과정과 관련이 깊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공감을 수행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18]. 그 결과, 문학과 예술은 이해를 확장하는 장이 아니라 올바른 감정반응을 수행하고 평가받는 장으로 변질되기 쉽다.

셋째, 공감 중심 교육의 정당화는 문학과 예술경험이 요구하는 해석의 과정을 단순화할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은 본래 독자가 상황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확정하기보다 해석을 지연시키고 질문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공감을 교육의 주요 성과로 설정할 경우,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가’를 교육의 핵심 성과로 간주하기 쉽다. 이때 왜 그러한 감정이 발생했는지, 그 감정이 무엇을 요청하는지에 대한 해석의 과정은 충분히 탐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과 감응이 어떤 이해를 요청하는지를 해석하는 일이다. 공감은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이해를 완결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비판적 의료/건강 인문학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공감 중심의 의료인문학 교육은 의료를 둘러싼 권력구조, 사회적 불평등,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과 같은 맥락적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할 위험이 있는데[19], 이는 공감 중심 교육이 의료경험의 복합적 맥락에 대한 해석작업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한계들이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는 공감을 교육의 종착점으로 삼을 때 취약성이 오히려 빠르게 처리될 수 있는 감정의 언어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타자의 취약성은 공감이라는 친숙한 감정 속에서 단순화되거나 개별적 맥락을 잃은 채 일반화될 수 있다. 그 결과, 취약성은 더 이상 질문으로 남지 않고 이미 이해된 것처럼 처리된다.

이 지점에서 감응과 공감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감응은 공감을 대체하거나 공감보다 우월한 반응이 아니다. 감응은 취약성과 마주침에서 인지적 판단에 앞서 먼저 발생하는 정동적 반응이며, 공감은 그러한 감응을 바탕으로 타자의 경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인지적 노력이다. 그러나 공감이 그 자체로 완결될 때, 감응이 요청하는 해석의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잠재력은 학생들에게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공감능력을 증진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감응 이후에 도래하는 이해의 지연을 견디고, 그 의미를 해석하도록 요청하는 학습조건을 구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문학과 예술을 의학교육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공감훈련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해석을 학습하게 만드는 장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학과 예술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해석학적 장으로 기능하는가? 다양한 형식의 문학과 예술경험이 공통적으로 취약성의 감응을 즉각적인 반응으로 닫지 않고 이해의 지연과 해석의 요청으로 열어놓는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질병 서사(illness narrative) 읽기는 학생으로 하여금 환자가 질병을 경험하는 방식을 의학적 언어가 아닌 삶의 언어로 마주하게 한다. 의료 서사가 객관성을 지향하는 도식화된 언어로 환자의 목소리를 수동화하는 것과 달리, 질병 서사는 질병이라는 사건을 삶의 맥락 안에 위치시키고 고통의 주관적 결을 드러낸다. 의학적 진단명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질병의 체험적 양상이 서사의 형식을 통해 드러날 때, 읽는 이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분류하거나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때 텍스트는 단순히 공감을 유발하는 도구가 아니라 같은 질병을 두고도 서로 다른 언어로 구성되는 환자 이야기와 의사 이야기 사이의 간극, 즉 두 서사의 공약 불가능성을 가시화하는 해석학적 장으로 기능한다[20].

시각예술 역시 유사한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 질병과 신체, 죽음을 다루는 예술작품은 그것을 감상하는 학생에게 언어로 즉각 조직되지 않는 감응을 불러일으키며, 그 감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실제로 일부 의과대학의 시각예술 교육프로그램들은 작품 관찰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능력과 성찰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질병 서사 읽기와 그 지향을 공유한다[21].

이와 유사한 구조는 연극과 역할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포럼 연극과 같은 참여적 연극기법은 학생이 환자나 의료인의 역할을 직접 수행하거나 개입함으로써 임상현장의 어려운 상황을 신체적·경험적으로 마주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역할의 정확한 수행이나 정답의 제시가 아니라 학생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질문하고 망설이며 다양한 접근을 시험하는 과정 자체이다. 진행자의 역할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그 불확실성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런 경험적 접근은 이론과 원칙에 근거한 기대에서 벗어나는 실제 상황에서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능력을 키운다[22].

이러한 다양한 형식의 문학과 예술경험 가운데 서사의학의 핵심 교육장치인 ‘평행 차트’는 취약성의 감응이 해석적 실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음 절에서는 평행 차트를 중심으로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취약성의 감응에서 돌봄의 해석학으로: 평행 차트와 그 해석

평행 차트는 의학에 문학비평 방법론을 결합하여 서사의학을 정립한 Charon [23]이 1990년대 초반에 개발한 교육방법이다. 이는 임상현장에서 환자가 질병을 경험하는 방식을 관찰하거나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의료인과 학생 의사가 겪은 일을 돌아보며, 이를 공식적인 의료 차트가 아닌 일상 언어로 기록하는 또 다른 차트이자 성찰적 글쓰기의 한 형태를 가리킨다[23]. 평행 차트의 목적은 의료인이나 학생 의사의 감정을 배출하거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데 있지 않다. 환자가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를 더 깊이 인식하고,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명시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임상수행능력을 향상하는 데 있다[23]. 평행 차트 작성 후에는 동료와 교수자들이 함께 모여 평행 차트를 읽고 듣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교수자는 평행 차트 속 이야기의 장르, 시간성, 은유, 서사적 상황과 구조 등에 주목하며 텍스트를 분석하고 논평한다. 또한 청자인 동료들로부터도 다양한 피드백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 결과 평행 차트가 상호 이해와 해석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23].

아래의 평행 차트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생 의사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를 진찰한 후에 기록한 것으로, 취약성이 어떻게 감각적·정동적으로 감응되고, 그 감응이 어떻게 돌봄에 대한 해석적 질문으로 전환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안녕하세요. 저는 OOO 교수님 담당 학생입니다. OOO 님 맞으시죠?”

    “.......”

    “안녕하세요?”

    “.......”

    긴장된 마음에 나는 의식이 없는 그녀에게 반복해서 인사를 건넸다. 마치 내 인사에 그녀가 깊은 잠에서 깨어 방긋 웃으며 인사해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큰소리로 인사를 해도, 살짝 흔들어 보아도, 조금 더 세게 흔들어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가 간간이 들려주는 거친 숨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가 혹시 죽은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할 뻔했다. 다시 찾아온 적막 속에 나는 무언가 또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 이제 내가 또 무엇을 확인해야 하지? 미리 준비해 간 신경학적 검사내용을 훑어보며 당황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었다. 우선 Glasgow Coma Scale (GCS) score를 확인해 보자. 불러도 반응이 없지만 통증을 가하면 눈을 뜨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손 가까이에 있는 그녀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그녀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눈은 뜨지 않고 꼬집은 팔만 조금 움직였다. 내가 평가한 그녀의 GCS score는 불렀을 때 아무런 반응하지 않고 통증에도 눈을 뜨지 않지만, 회피반응은 보이는 상태였다. 이제 뇌신경 기능을 하나씩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의식이 없는 그녀에게 이것들을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후각신경은 확인이 안 되고 시력검사도 못 하고 시야검사도 안되고.... 오! 동공반사는 확인할 수 있겠다. 곧바로 펜 라이트를 들고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환자분 눈 좀 볼게요.”

    “.......”

    그녀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빛을 비췄다. 그녀의 동공은 바로 내게 반응을 보여주었다. 살아있음을 드러내 주는 그녀의 작은 반응이 나는 기쁘게 느껴졌다. 이어서 얼굴 주름이 균등하게 생기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녀에게 통증을 주었고, 심부건 반사를 확인하기 위해 의료용 해머를 들고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두들겨 보기 시작했다. 동기들과 연습했을 때 생각보다 반사를 확인하는 것이 어려웠던 터라 걱정하였는데, 그녀는 그런 나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며 큰 반사반응을 보여주었다. 신기한 마음에 한 번 더 두들겨 보고 반대편도 다시 확인해 보고 책에서 보았던 과반사가 이런 거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엄청 많이 들어왔던 바빈스키 반응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의료용 해머 끝으로 그녀의 발바닥을 긁자, 그녀의 엄지발가락이 구부러지는 게 아니라 쫙 펴졌다! 우와!! 정말 배웠던 것처럼 반응하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을 때, 자기 담당 환자를 다 보고 온 동기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내가 발견한 그녀의 병적 반응들을 보여주고 싶어 동기들과 함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까 확인 못 했던 간접 동공 반사를 확인하고자 동기 한 명에게 왼쪽 눈꺼풀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자신 있게 오른쪽 눈꺼풀을 힘차게 열고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굳게 닫혀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열리는 그 순간, 왈칵하고 그녀의 슬픈 눈빛이 강렬하게 쏟아져 나오며 내 눈을 통해 들어와 나의 마음에 쿵 하고 박혀왔다.

    ‘그.만.해’

    그녀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 가까이 들이밀고 있던 펜 라이트를 내려놓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망치듯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그녀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의식이 없는 그녀를 객체화하고 결국은 나와 그것의 관계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내일 아침 회진에서 교수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 나의 배움을 위해.... 내가 그녀에게 한 일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고,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내가 확인해야 하는 것을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조금 보태어 열심히 확인했을 뿐이라고 자신에게 변명했지만, 나의 마음은 그녀의 슬픈 눈빛에 이미 점령당한 후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교수님과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나의 발걸음은 전날보다 무거웠고 조심스러웠다. 이전 같으면 전날 내가 미리 환자를 보고 발견한 내용을 환자를 만나기 전 병동 문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떨리면서 즐거웠겠지만, 다른 환자들과 달리 의식이 없는 그녀이기에 그녀 앞에 서서 전날 내가 그녀에게 행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녀에게 어떻게 들릴까 하고 생각하니 나는 그 순간이 못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교수님이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게 환자를 보는 소극적인 학생이 되어갔지만, 매일매일 의식 없는 그녀에게 찾아가 쓸데없는 이야기와 쓸모없는 손길을 내밀며 그녀가 내게 보여준 슬픈 눈빛에 대한 마음의 빚을 차분히 갚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 평행 차트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환자의 ‘눈’과 ‘눈빛’이 지닌 의미의 분명한 차이다. 차트의 전반부에서 학생 의사에게 환자의 눈은 동공 반사를 확인하기 위한 의학적 지각의 대상, 다시 말해 하나의 사물로서의 안구(眼球)에 불과하다. 눈은 검사되고 자극되며 반응을 산출하는 신체 일부로 기능한다. 그러나 환자의 눈빛에 처음 감응하는 순간, 사물로서의 눈은 사라지고 오로지 눈빛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눈빛은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그만해”라고 호소한다.

이 전환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나 공감의 발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Washida [24]에 따르면, 타자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가 움찔하게 되는 것은 타자의 시선이 나의 의식을 관통하여 나의 의식 내부를 폐쇄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 안에 머물 수 없게 되고, 타자의 시선과 함께 하나의 자기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 공동의 현재 속에 묶인다[24]. 이 평행 차트에서 학생 의사가 경험한 눈빛 역시 그러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환자의 눈빛은 학생 의사를 그가 머물고 있던 세계 밖으로 끌어내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취약성에 감응하게 만든다.

눈빛을 인식하기 전까지 학생 의사는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에 있으면서도 사실상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세계는 교과서와 강의를 통해 학습한 생의학 지식을 확인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로 구성된 세계이다. 그 안에서 환자는 교육의 재료이자 임상소견의 집합체로 존재한다. 그러나 환자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이러한 세계는 균열을 일으킨다. 중환자실은 더 이상 지식을 점검하는 학습의 장이 아니라, 고통받는 한 인간이 누워 있는 삶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이때 비로소 학생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인격적 만남이 가능한 순간이 열린다.

환자의 눈빛은 학생 의사를 의학교육의 세계에서 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 의사에게 무언가를 요청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 Levinas)에 따르면, 이러한 요청은 윤리적 명령과 그에 대한 응답이라는 책임의 구조를 형성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이룬다. 그는 근대 철학을, 주체를 중심에 두고 타자를 인식과 판단의 대상으로 포섭해 온 전통, 즉 ‘동일성의 철학’으로 규정한다[25]. 그러나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사태는 정반대이다. 구체적인 타자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고 요청하며, 내가 그 요청에 응답할 때 비로소 주체가 성립한다. 레비나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청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달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헐벗은 타자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 바로 ‘얼굴’이라고 말한다[25]. 얼굴은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나 형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호소이자 응답을 요청하는 윤리적 출발점이다.

이 평행 차트에서 학생 의사는 환자를 의학적 대상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레비나스가 말한 동일성의 철학을 체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환자의 눈빛에 노출되는 순간, 기존의 세계는 붕괴하고 환자의 호소가 처음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학생 의사는 더 이상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환자의 눈빛이 요청하는 바에 감응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감응은 학생 의사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다시 이해하도록 요구한다.

중요한 점은 이 장면에서 돌봄이 곧바로 규범적 판단이나 올바른 행동규칙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 의사는 자신이 한 행위를 정당화하려 애쓰지만, 동시에 그 정당화가 충분하지 않음을 인식한다. 이때 돌봄은 감정의 진정성이나 태도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등장한다. 환자의 눈빛은 학생 의사의 판단을 멈추게 하고, 이해를 지연시키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평행 차트는 돌봄이 기술이나 감정 이전에 해석적 실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학생 의사가 이후 매일 환자를 찾아가 말을 건네고 손길을 내미는 행위는 효율적이거나 정량적 평가를 할 수 있는 돌봄의 수행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감응했던 취약성에 대해 어떤 응답이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정답을 산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미를 다시 구성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이다.

따라서 이 평행 차트가 드러내는 것은, 학생 의사가 타자의 취약성에 감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거나 판단의 언어로 조직하지 못한 순간이다. 다시 말해 이 평행 차트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를 묻기보다 학생이 어떤 장면 앞에서 이해의 한계에 부딪혔는지를 가시화하는 기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행 차트는 의학교육의 해석학적 장으로 기능한다. 학생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거나 감정을 점검하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었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다시 묻게 된다. 이러한 질문은 이해를 지연시키고 판단을 보류한 채 상황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취약성에 대한 감응이 이해의 요청으로 전환되는 순간, 돌봄은 더 이상 기술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적 실천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해석학적 장이 교육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를 학생 개인의 내적 성찰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교수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교수자는 학생에게 올바른 해석이나 정답을 제시하는 존재라기보다는 학생이 도달한 이해의 한계를 성급히 봉합하지 않고 그 상태를 사유의 장으로 유지하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 평행 차트의 경우, 교수자의 역할은 학생의 행동을 즉각적으로 평가하거나 윤리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교수자는 학생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어떤 순간에서 판단이 멈추었는지, 그리고 그 멈춤이 무엇을 요청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말하게 만드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더 간단히 말하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을 더 알고 싶은지’ 묻는 것이다[23]. 이러한 질문은 학생이 감응한 취약성을 언어화하고 해석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한다. 즉 교수자는 취약성에 대한 감응을 곧바로 규범적 결론으로 수렴시키지 않고, 그 감응이 어떤 이해를 요구하는지 함께 탐색하는 해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적 관계 속에서 학생은 자신의 망설임이나 불편함을 실패나 미숙함의 징후로 숨기지 않고 해석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때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는 해석의 장 안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능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결론: 의학교육에서 취약성을 이해하고 돌본다는 것

이 논문은 의학교육에서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역할을 재구성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로서 ‘취약성’과 ‘돌봄’이라는 두 개념을 해석학적 관점에서 재사유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과학기술 중심의 의학교육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문학과 예술은 오랫동안 공감능력 향상이나 감수성 교육의 도구로 정당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의료현장에서 실제로 경험되는 취약성의 양상과 그에 응답하는 돌봄의 판단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에 이 논문은 취약성을 의료 미학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감응의 사건으로, 돌봄을 그에 응답하는 해석적 실천으로 재사유함으로써, 문학과 예술이 의학교육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취약성이 의료적 판단 이전에 감각과 정동의 차원에서 먼저 사건적으로 경험된다는 점을 밝혔다. 기존 생명의료윤리 담론과 의학교육에서 취약성은 자율성의 결핍상태, 즉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 취약성은 사전에 규정된 범주로 포착되기 이전에 환자의 침묵과 표정, 망설임과 같은 감각적 장면 속에서 먼저 드러난다. 이러한 드러남은 의학 지식의 부족함이 아니라 지식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의미가 아직 언어로 조직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취약성을 미학적 차원에서 사유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취약성은 판단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먼저 마주치고, 견디며, 해석을 요구하는 경험으로 등장한다.

두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취약성의 감응이 의미 있는 돌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해석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는 점을 밝혔다. 공감이나 연민은 돌봄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의학교육의 목표이자 종착점으로 설정될 때 감응 이후에 요구되는 해석의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돌봄은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나 올바른 태도의 표출을 넘어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응답하는 프로네시스의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돌봄은 빠른 결론보다 이해의 지연을 견디는 실천으로, 그리고 외부 규범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상황이 제기하는 의미를 읽고 응답하는 해석적 실천으로 자리 잡는다.

세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서사의학의 핵심 교육장치인 평행 차트의 분석을 통해 위의 두 논점이 의학교육의 실제 장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평행 차트는 학생이 타자의 취약성에 감응한 순간을 기록하면서도 그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었던 지점을 드러낸다. 차트에 남는 것은 공감의 성취나 도덕적 성장의 서사가 아니라 설명과 경험 사이의 어긋남 앞에서 발생한 망설임의 순간이다. 이 망설임은 교육적으로 소거되어야 할 공백이라기보다 해석이 시작될 수 있는 자리로 남는다. 문학과 예술의 교육적 잠재력은 바로 이 자리를 의학교육 안에 붙잡아 두는 데 있다. 문학과 예술은 취약성의 감응을 즉각적인 반응으로 닫지 않고 이해와 판단을 향해 열어놓는 구조적 조건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해석학적 장이 교육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교수자의 역할 또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교수자는 학생에게 올바른 해석이나 정답을 제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이 도달한 이해의 한계를 성급히 봉합하지 않고 그 상태를 사유의 장으로 유지하도록 돕는 해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적 관계 속에서 학생은 자신의 망설임이나 불편함을 실패나 미숙함의 징후로 숨기지 않고 해석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는 추상적 덕목이 아니라 해석의 장 안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능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이 논문은 한계를 지닌다. 이 논문은 주로 개념적·이론적 분석과 평행 차트 사례에 의존하고 있으며, 다양한 임상 과목이나 실습교육 단계에서 이러한 교육적 접근이 어떻게 달리 작동하는지에 관한 경험적 검토는 충분히 하지 못했다. 또한 평행 차트는 문학과 예술을 활용한 의학교육의 한 실천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이를 문학과 예술 교육 전반의 효과나 가능성으로 일반화하기에는 제한이 있다. 문학과 예술의 장르와 매체에 따라 취약성의 감응과 해석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비교연구 역시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은, 취약성을 이해하고 돌본다는 것이 단순히 더 많이 느끼거나 더 잘 행동하는 문제가 아니라 멈추고 해석하고 응답하는 능력을 기르는 문제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의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전문직 형성을 기술의 숙련이나 태도의 훈련을 넘어, 해석적 판단을 수행할 수 있는 인간적·임상적 주체의 형성으로 다시 사유하게 한다. 취약성을 이해하는 일과 돌보는 일은 결국 동일한 질문을 공유한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보며,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이 질문을 의학교육의 중심에 놓을 때, 문학과 예술은 부수적인 교양의 영역을 넘어 의료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Notes

Conflict of Interest

이 연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이나 이해당사자로부터 재정적, 인적 자원을 포함한 일체의 지원을 받은 바 없으며, 연구윤리와 관련된 제반 이해상충이 없음을 선언한다.

Authors’ contribution

황임경: 논문 설계, 문헌 검색 및 분석, 논문 작성

Funding

이 논문은 2026학년도 제주대학교 교원성과지원사업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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