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그 때 나는 내과 전공의 4년차였다. 심장내과를 전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4년차 동안은 심장내과에서만 수련받는 교육일정이었다. 당시 나는 심초음파실에서 수련 중이었다. 심초음파실 직원이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나가 보니, 내가 1년차 때 만났던 환자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처음 본 남성이 함께 서 있었다. 가볍게 인사한 후 그녀가 내게 건넨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선생님, 우리 남편 부검해 주세요.”
나는 당황했다.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검을 요청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 속에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부검이라고, 왜 부검을 요청하는 것이지? 무슨 문제가 있었나? 그리고 왜 내게 와서 부검을 요청하는 것이지? 지금은 내(가 직접 진료하는 파트의) 환자도 아닌데, …’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엇갈렸던 탓인지, 내가 했던 첫 응답은 이랬다.
“왜 제게 부검 요청을 하시는 것이지요?”
그녀는 내 ‘비인간적’이고 사무적인 대응에 이렇게 이어 말했다.
“선생님이 우리 남편 같은 환자가 흔하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남편의 심장과 폐를 꺼내서 부검해 주세요. 샅샅이 다 살펴보시고, 그래서 우리 남편 같은 환자들을 살려주세요. 그리고 그 부검하는 자리에 선생님이 꼭 함께 해주세요. 그리고 이 분은 제 시동생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대답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말이었던 것 같다. 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요청을 스승이신 김성순 교수님께 보고드렸고, 스승께서는 심장병리를 전공하신 병리학 교수님, 그리고 심장혈관외과 과장님께 연락하셨다. 그리고 부검의 자리에 내가 함께 있었다. 환자는 베체트병으로 인해 대동맥판륜을 포함한 대동맥 근위부(aortic root)에 심한 염증이 생겼고, 그 결과로 급성 대동맥판막 역류와 판막 주위 농양이 동반된 상태였다. 지금은 베체트병으로 인한 혈관질환의 치료에 대한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만, 그 당시는 여러 가지로 잘 모르는 때였다.
사연은 이랬다. 내과 전공의 1년차였던 여름이었다. 외래에서 신환이 입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통은 병동에 입원하면 연락이 오는데, 이 환자는 입원하는 즉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연락이 미리 온 것이다. 연락을 받자마자 병실로 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심장내과 환자들이 입원하곤 하던 병동이었다. 미군들이 지어준 것이었다. 다인병실의 창가 쪽 침대에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숨이 찬지 눕지 못하고 앉아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키가 훤칠하게 큰 호남이었고,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는 분이었다. 곁에는 남편을 염려스럽게 바라보는 부인이 있었다. 입원 시 진단은 원인은 분명하지 않으나 급성 대동맥판 역류증으로 인한 심부전증이었다. 혈압을 재니 수축기혈압은 정상이었으나 확장기혈압을 측정하기 어려웠다. 한참을 내려가는데도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맥압(pulse pressure)의 확장소견이었다. 청진을 해보니 대동맥판 역류증이 있을 때의 전형적인 심잡음을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진행된 일이어서 원인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선 증상을 완화해야 했다. 환자가 입원하면서 교수님의 명령(처방)이 함께 전달되었다.
“Captopril을 titration해서 maximal pressure unloading 치료를 진행하도록 하지!”
Captopril은 혈관확장제로서 혈관저항을 감소시켜 대동맥판 역류로 인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환자의 혈압이 정상이었으므로 혈관확장제를 투여했을 때 혈압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 나는 내과 전공의로서 혈압과 관련한 생리를 실제로 배워가는 중이었다. 당시에 우리가 썼던 captopril titration protocol은 다음과 같았다. 최소 용량인 6.25 mg으로 시작해서 약품의 반감기를 고려해서 6시간마다 용량을 증량해 가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이 약이 뱀독에서 유래했으니 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하셨다. 약물을 주기 전에 혈압을 재고, 혈압이 정상이면 약을 준다. 투약 후 즉시 혈압을 재고, 5분 후에 그리고 1시간 후에 혈압을 측정했다. 그리고 혈압이 괜찮으면 다시 5시간 후에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약물을 투여하면서 머리 속에는 혈압과 관련한 도식(schema)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혈압(blood pressure)=심박출량(cardiac output)×혈관저항(systemic vascular resistance)
이 약을 주어서 혈관저항이 떨어지면, 심장의 후부하(afterload)가 감소되므로 심박출량이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혈관저항의 감소와 심박출량이 증가되는 효과가 균형을 이루면 혈압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후부하의 감소, 즉 혈관저항이 감소되면서 대동맥판 역류증도 감소될 수 있어,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라는 질병의 병태생리와 환자에게서 확인해야 하는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분주하게 되뇌고 있었다. 환자와 부인에게도 가능한 평이한 언어로 이 치료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했고, 환자는 약을 잘 견뎠고, 환자의 증상도 상당히 호전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책에서 읽고 스승께 배웠던 의학 지식을 내가 돌보는 환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뿌듯했다. 이런 의학적인 내용을 애써 가르쳐 주려 했던 내가 기특했던 것일까 환자와 그 부인과는 뭔가 남다른 교감이 생겼던 것 같다.
검사를 진행하면서 환자의 대동맥판막과 대동맥 판막륜 부위에 염증을 시사하는 소견이 발견되었다. 세균 배양을 했지만, 아무 균도 자라지 않았다. 감염내과와 협진을 진행했다. 대동맥판 역류증은 약물로 완치할 수 없고, 결국 최종적인 치료는 판막을 대치하는 인공판막치환술이었다. 그러나 염증이 있는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것에 고민이 깊었다(현재는 감염으로 인한 것이 아닌 베체트병으로 인한 경우는 강력하게 면역억제 치료를 진행하지만, 당시에는 그에 대한 경험도 밝혀진 사실도 없었다). 환자가 이런 경과를 보이는 중에 나의 심장내과 수련기간이 다 되어 다른 분과 수련을 위해서 그 환자를 떠났다. 그리고 2년차가 되었을 때 협진 의뢰 때문에 만났던 기억이 있었고, 그리고 나는 그 환자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환자는 심장판막수술을 진행 받았으나, 대동맥 판막 주위의 염증 조절이 어려웠고, 여러 어려움 끝에 환자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일을 겪어 내어야 했던 부인과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나를 찾아와 부검을 요청했던 것일까? 그 보고의 과정에서 교수님들은 “자네가 그 환자를 정성껏 돌봤던 모양이네, 자네를 찾은 것을 보니”라고 칭찬해 주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남편을 부검해달라는 요청의 함의는 내가 치료하던 그녀의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그렇게 전한 것이다. 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소식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내가 했어야 하는 답은 ‘왜 내게 부검 요청을 하느냐’는 질문이 아니어야 했다. 사랑하는 이의 상실에 대한 공감과 그 슬픔에 대한 연민의 표시여야 했다. 당황함과 더불어 어쩌면 “어떡해요? 어쩌지요?!”와 같은 응대일 수 있다. 구체적인 표현이 어떠하든지 그러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듣지 못했던 것이다. Rita Charon은 의사가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경청(attentive listening)에 대해서 이렇게 진술했다.
“나는 앉아서 환자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즉 그 형태와 비유들, 간극들과 침묵에 집중한다(I sit and pay attention to what they say and how they say it: the forms, the metaphors, the gaps and silences) [
1].”
“아픈 사람을 돌보는 임상의는 먼저 그 환자의 현존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온전한 관심, 자기 기여, 예리한 관찰, 그리고 조율된 집중의 결합이 의사로 하여금 환자가 말과 침묵, 그리고 신체상태를 통해 내보이는 것을 등록할 수 있게 한다(The clinician caring for a sick person must begin by entering the sick person’s presence and absorbing what can be learned about that person’s situation. A combination of mindfulness, contribution of the self, acute observation, and attuned concentration enables the doctor to register what the patient emits in words, silence, and physical state) [
2].”
나아가 “우리 남편 부검해 주세요”라고 부탁한 환자 부인의 말 속에 담긴 상실의 아픔,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마지막 헌신, 그리고 다른 환자들을 살리고자 하는 숭고한 의지를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대신 나는 “왜 내게 부검 요청을 하느냐”는 방어적 질문으로 응답했다. 이는 Charon [
2]이 강조한 대로 그의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대신 그 찰나와 같은 순간에 “왜 내게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이지?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라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오갔는데, 그것은 우선 나를 보호하려는 보호 본능과 내 입장을 먼저 살피는 이기적인 헤아림이었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합당히 보여야 할 반응, 해야 할 말 대신,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말로 답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런 헤아림을 가진 내게 환자의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의 심장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배운 것으로 같은 아픔을 겪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숭고한 결정이었다. 그것은 개인적 상실을 넘어서 더 큰 치유 공동체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을 건네준 이 일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에게 의사됨의 본질, 즉 “환자에게 의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가늠자가 되었다. 오래 전의 일이고, 그때 기억의 많은 부분들이 흐려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심장을 주어 다른 이들을 살려주기를 바랐던 한 가족의 간절한 소망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라는 엄중한 당부로 여전히 내게 남았다.
의사는 아파하는 누군가와 그 가족의 삶의 서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회복의 기쁨, 더불어 좌절을 함께 겪는다. 지식과 기술 너머로 간절함과 안타까움, 기쁨과 슬픔이 교직되는 인생의 서사에 중요한 등장인물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의사로 사는 것이 가지는 버거움이자 동시에 명예로운 특권이다.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는 의정사태 또는 의료대란이라 불리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시간이다. 그 날들을 살면서, 의사의 권리와 환자와 사회의 요구가 충돌하고 갈등하는 동안에, 의사됨의 숭고함이나 명예를 그만 잊은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빚어지는 서사의 빛이 스러지고, 그 서사가 이루어지는 장이 깨어지는 것 같아 아프다.
그래서일까? 내게 좋은 의사가 되기를 부탁하며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건네었던 한 가족의 당부가 살아나, 나는 다시 그 일을 기억한다. 내게 부탁했던 그 가족이 나의 이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없을지 몰라도, 나와 같이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고민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서, 그의 부탁을 다시 나누는 것(representation)은 이 난국에서 어떤 방향으로 길을 잡아가야 할지에 중요한 울림이 될 것 같기 때문이고, 내게 좋은 의사가 되기를 부탁하며 생명을 건네는 결정을 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고백하고 싶고, 동시에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의사로서의 내 삶에 여전히 든든히 교직(affiliation)되어 살아 있음을 고백하고자 함이다.